長古之善爲士者(장고지선위사자)

必微妙玄達 深不可志(필미묘현달 심불가지)

是以爲之容(시이위지용)

豫乎其若冬涉川(예호기약동섭천)

猶乎其若畏四鄰(유호기약외사린)

嚴乎其若客(엄호기약객)

渙乎其若釋(환호기약석)

敦乎其若樸(돈호기약박)

混乎其若濁(혼호기약탁)

孰能濁以靜者將徐淸(숙능탁이정자장서청)

孰能安以動者將徐生(숙능안이동자장서생)

保此道者不欲尙呈(보차도자불욕상정)

 

◐ 번역 ◐

먼 옛날의 제대로 도인(神人)이 된 존재는

반드시 미묘(微妙)현달(玄達)하니 깊어서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그 모습을 그려보면


도인의 신중함은 겨울에 냇물을 건너듯 하구.

도인의 주저함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하네.

도인의 (자신에게) 엄함은 손님인 듯 하구.

도인의 변환(변신)은 얼음이 녹아내리듯 하네.

도인의 도타움은 통나무 같고.

도인의 혼돈은 흐린 물 같네.

 

누가 (내면을 관조하는) 고요함으로 탁한 것에 능한 존재가 되어

장차 (더러운 것을) 서서히 맑게 하겠으며,

누가 (내면의 창조적) 움직임으로써 고정관념을 넘어선 존재가 되어

장차 (보수적 사회를) 서서히 새롭게 변화하게 할 수 있는가?

(그르므로) 이러한 도를 보전하는 존재는

(위의 6가지 방식으로)항상 드러내고자 하지 않습니다.

 

◐ 개요 ◐

이장은 전체적으로 도인(道人, 神人)이 외적으로 보인다고 여겨지는 모습과 태도를 묘사하고 있군요.

여타의 장과 마찬가지로 이번 장도 전체적인 맥락이 있군요.


우선 도인은 미묘(微妙)현달(玄達)이라고 전제로 하면서

그 도인의 모습을 열거한 ① 豫(예, 涉川) -> ② 猶(유, 畏鄰) -> ③ 嚴(엄, 客) -> ④ 渙(환, 釋) -> ⑤ 敦(돈, 樸) -> ⑥ 混(혼, 濁)에서

①②는 외부에 대한 자각을 통하여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

③④는 외부와 화합을 통하여 조화롭게 처신하는 것.

⑤⑥은 먼저 자신이 존재가 되어 외부를 구원하여 은혜롭게 존재하는 것.

靜 - 能濁 : 濁 -> 淸 :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는 고요함으로 먼저 정화되어,

動 - 能安 : 安 -> 生 : 자신의 내적 창조력으로 세상을 변화하게 하는 것.

이어서 능탁(能濁)과 능안(能安)의 존재 됨됨이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되

不欲尙呈으로 그 공은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해설

맑은 물에 큰 고기가 살기가 어렵다는 표현에서처럼

도인은 대부분 깨끗하게 행동하지는 않는것으로 보인답니다.

이런 도인은 어떤 경우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어둠을 알고, 이해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여서,

주어진 맥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우선 자신이 주도적으로 변화하고,

주변과 진실로 소통하는 존재가 되어서, 관련 당사자도 변화하고,

상황도 (의식하기 힘들 정도로)저절로 변화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도인이란 게 대부분의 수도자의 바램처럼

신통력을 지닌 능력자로서 초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양면성을 두루 통달하고 미묘함으로 나아간 존재인 것이지요.

이런 능탁(能濁)하고 능안(能安)한 존재란,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나아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사랑하여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서,

그 부정성을 긍정화 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머물지 않는 듯한 존재인 것이지요.


◐ 미묘(微妙)현달(玄達)

미묘(微妙)란 신(神)이나 도(道)의 본성인 무형(微)의 묘(妙)한 것으로 확실히 존재는 하지만 그 형체가 인식되기 쉽지 않은 상태임. 실제로 있다는 확신하는 관점으로 보면(無欲의 상태) 보이고, 의심하는 눈으로 보면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으로...(아닌 경우 빼고) 제대로 도를 체득한 도인의 특성도 같다는 것임.

현달(玄達)은 유욕(有欲)의 현지(玄之, 인간의 도) 과정을 거쳐서 무위(無爲)한 현(玄, 神의 道)에 도달하여 통달한 존재 상태임.

불교의 비결정적이고 불확정적이라는 공(空)을 터득한 상태와 유사하지요.


◐ 도인(道人)의 외형과 내심

① 도인의 신중한 기다림이 우유부단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음.

- 중국 국적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는 바둑기사 임해봉은 별칭이 ‘이중허리’이듯이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다.’는 신중함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길임에도 그 실행은 아끼더군요.(비록 아끼다 망치는 경우도 있지만...)

- “오직 모를 뿐”,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고 못가면 불행이다”

② 도인의 주저하면서 두리번거림(망설임)을 두려워서 눈치 보는 것으로도 여겨 질 수 있음.

- 팔당을 지나 양수리 가는 중간에 다산 선생의 묘소와 생가가 있는데 그 곳에 여유당(與猶堂)이 복원되어 있지요. 본뜻은 여유(餘裕)있으라는 게 아니라 여유(與猶)이고 예유(豫猶)인 것이지요.

- 두려움으로 표현된 사랑


③ 도인 자신을 엄히 삼가는 것은 손님처럼 주인의식이 부족하여 지나치게 겸손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음.

- 일처리를 할 때 주위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는 것을 선호하며,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고집하기 보다는 남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태도.

성인은 천지의 소리도 귀 기울여서 듣지만, 남들의 의견에도 신의 뜻이 있을 수 있음을 직관으로 인정하고 항상 열어둔다.


④ 도인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환(변신)하는 것이 줏대가 없는 것으로도 여겨질 수 있음.

- 용서할 때는 마음이 봄눈 녹듯이 변신하여 집착하지 않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여 융화하고,

때로는 아첨의 극치를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중심이 없어 흐물흐물하게 처사하는 기회주의자로도 여겨질 수도 있음.


⑤ 도인의 도타움은 통나무 같아서 때에 이르면 다양하게 쓰이나 당장에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일 수 있음.

- 도인은 그 됨됨이가 넓고 깊어서 쉽게 헤아려지지 않은 상태로서 다양하게 봉사할 수 있는 존재 상태이지만, 미련하게 여겨져서 단기적으로는 환영받기가 어렵다.

군자불기(君子不器)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상태.


⑥ 도인의 혼돈은 흐린 물처럼 융합된 상태이지만, 희색분자로 여겨질 수도 있음.

- 도인의 무분별이 관점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이기도 하지만, ‘동일함’이기도 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음.

그것은 정신이 나가서 무질서(無秩序)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질서가 있기도 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상태임.


◐ 孰能濁以靜者 將徐淸(숙능탁이정자 장서청)

‘능탁(能濁)’과 ‘탁(濁)한 것’은 명백히 다르지요.

‘탁한 것처럼’과 ‘탁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보살행’과 ‘희색분자가 되는 것’은 명백히 다르지요.

성서에 예수님이 어린이‘처럼’ 되라고 한 것인데, 일부 종교인들은 진짜 어린이‘가’ 되어서 (神에게 자신의 이기적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때를 쓰는 것은 예수님이 뜻한 바가 아니지요.

어둠이 되어보고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어둠을 구원할 수가 없지요.

자기 내면의 고요한 통찰을 통하여 濁에 能해지므로써 양면성을 넘어선 신성한 존재가 되어서야, 움직이지 않고도 정화를 할 수 있게 되지요.

즉, 자신이 진실로 바뀌면 외부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정화된다는 것이지요.


◐ 孰能安以動者 將徐生(숙능안이동자 장서생)

앞 구절과 동일 맥락으로

누가 내면의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움직임으로써 보수(안주)적인 고정관념으로 인한 저항을 능숙히 다루는 존재가 되어(잘 다루어)

장차 보수적인 세상을 서서히 개혁하겠는가?

결국 능탁(能濁), 能安(능안)하여 미묘(微妙)현달(玄達)한 존재 즉 제대로 된 도인만이 정화(淨化), 변화(變化)를 일으킬 수 있으며, 그 공을 드러내고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