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실천
以道佐人主者(이도좌인주자)
不欲以兵强於天下(불욕이병강어천하)
善者果而已(선자과이이)
不以取强(불이취강)
果而不伐(과이불벌)
果而弗驕(과이불교)
果而弗矜(과이불긍)
是謂果而不强(시위과이불강)
其事好(기사호)
도로써 사람들의 주인(리더)을 보좌하는 자는
병력으로써 천하를 강압하려 하지 않습니다.
(병력을)제대로 사용하는 자는 (무력의 기능적)목적을 달성할 뿐이지
(되도록이면) 강압을 취하고자(싸워 이기려고) 아니한다.
(무력의)목적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무력의)목적을 이루지만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력의)목적을 이루었다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무력의)목적을 달성하려 할뿐 위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참으로 괜찮은 일입니다.
◐ 해설 ◐
노자의 비폭력(非暴力)주의(무폭력이 아니라)를 표현한 장이군요.
폭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제대로 사용하라는 것으로,
폭력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무력을 쓰라는 것임.
무력의 방식으로 위세를 부리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존립 목적이 범죄자의 검거에 있는 게 아니라, 범죄의 예방에 있듯이,
군대의 근본 존립 목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랍니다. 핵무기의 용도가 실제의 사용보다(실제로 사용하면 공멸)
사실상 국가 간의 견제와 균형에 이바지 하고 있는 것처럼
군대도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차원에서는 필요한 것이지요.
노자는 이런 식의 실제에 입각한 ‘평화’를 이야기하지,
결코 명분과 구호적인 이야기는 아니지요.
전쟁의 승리는 근본적으로 승리가 아니며,
특히나 전쟁은 무력을 과시하는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어떤 전쟁이라도 궁극적으로 괜찮은 결과는 없다.(아닌 경우 빼고)
패한 나라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칼로 흥한 사람은 반드시 칼로 망한다.”는
바로 이런 폭력의 악순환을 말하는 거지요.
무력으로 위세를 부리면 당장은 굴복을 얻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결국 무력은 무력으로 망하게 될 것으로.(역사가 증명한다)
실례로 미국이 이라크 전(戰)에서의 목적이
겉으로 표방했듯이 ‘이라크의 해방’이었다면,
목적인 ‘후세인 축출’을 달성하면 더 이상 공격을 그만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을 믿고 교만하며,
전쟁의 승리를(실제는 계속 전쟁 중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요.
노자에 의하여서도 참으로 괜찮지 않은 처신의 나라로...
여하튼 무력은 절대적으로 자랑스러운 것은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도 일부 (패권주의)국가들과 그 군산복합체 관련자들은
생존을 위해 분쟁이 일어나는 세상에 의존하고 있고,
이런 의존이야말로 왜 우리 세계가 지속적으로
평화로운 제도를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그들이 저항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지요.
김일성이나 이승만도 6.25 내전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였고,
박정희 전두환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내세우며,
일부 정부나 권력자들은 전쟁 위험을 부추기거나 실행하는 방식으로,(사형에서처럼)
민중을 통제하여 자신들의 속셈(사실상 착취)을 이루려고 한다.
속지말자... 위정자 정치꾼...
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2005)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3502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땡큐 포 스모킹 (Thank You For Smoking, 2005)
이런 영화를 참고하시길...
항상 감사를...


◐ 신나이 구절 ◐
돈을 건물방호 체계와 공격용 무기들에서 건져내는 것으로.
아, 알았다! 당신은 우리가 군대를 철폐하길 원하시는군요.
너희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길 원한다.
하지만 군대를 철폐하지 말고, 그냥 규모만 줄여라.― 과감하게 너희가 군대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이유는 지역 내 질서유지밖에 없을 것이니, 너희는 전쟁 준비를 위한 무기, 즉 대량살상용 공격무기와 방어무기의 구입에 드는 비용을 과감하게 줄이는 동시에, 지역 경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너희가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해마다 예산편성 시기가 오면 할 수 없다고 아우성치던 그 일을.
각국은 치안유지 경찰은 독자적으로 유지하겠지만, 군대는 모두 해체할 것이다. 너희의 개별 주들이 주 집단 전체에 봉사하는 연방 평화유지군을 두는 대신 각자의 군대와 해군을 해체했듯이.
너희 주들이 주 의용군을 구성하고 소집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듯이, 개별 국가들도 언제라도 자신들의 의용군을 구성하고 소집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이따금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너희가 전쟁과 관련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악과 싸우는 전쟁을 통해서이며, 눈앞에서 위협 당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행동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최고 도덕법에 따라서 남의 생명이나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할 권리를 갖고 있다. 아니 너희는 그 법에 따라서 그런 행동을 중단시킬 의무를 지고 있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치명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조리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다툼을 해결하려고 폭력, 그것도 치명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국가들이 사이좋게 살게 될지, 그래서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 말해주십시오.
국가들 사이의 불화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불화란 건 단순히 개성을 드러내는 표식, 바람직한 표식일 뿐이니. 하지만 불화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엄청난 미숙성을 드러내는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적인 해결을 피하려는 국가들의 의지만 있다면, 폭력적인 해결을 피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의지가 생기리라고 생각할 테지만, 너희 같은 미개 문화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너희는 논쟁을 벌일 것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너희는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렇게 해도 지구에는 여전히 폭력이 존재할 것이니,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걸 중단시키기 위해 평화유지군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1권에서 지적했다 시피, 독재자임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면 독재자에게 권능을 주게 되고, 때로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너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하지 않는 그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 명백한 모순은 ‘신성한 이분법’의 일부이다. ‘신성한 이분법’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 이 경우에는 ‘평화로워 지는 것’― 이 되자면 먼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 아닌 존재’로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 종종 자신을 ‘자신’으로 아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 세상의 권력이 더 이상 개별 국가들의 재량에 좌우되지 않고, 이 행성에 존재하는 국가 집단 전체의 수준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건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진실이다.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세상은 마침내 평화로울 수 있고, 어떤 독재자의 개별 국가가 아무리 크고 힘세다 해도, 다시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협하지 못하며, 또 그렇게 하지도 않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세상은 마침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객관적인 한 분석이 이 점을 증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증거를 무시하고, 여전히 사회 문제를 야기한 바로 그 에너지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살인으로 살인을 끝내려 하고, 폭력으로 폭력을 종식하려 하며, 분노로 분노를 진압하려 한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의 위선을 보지 못하기에, 그들 스스로 위선을 저지르고 만다.
너희 행성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건 한 쪽이 원하는 것을 다른 쪽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한 쪽은 다른 한 쪽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갈등은 잘못 자리잡은 욕구에서 생긴다.
세상 전체를 통 털어 유일하게 지속될 수 있는 평화는 내적 평화뿐이다.
각자가 자기 내면에서 평화를 발견하게 하라. 너희가 내면의 평화를 발견할 때, 너희는 가진 것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그냥 너희가 더 이상 외부세계의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필요로 하지 않음’은 위대한 자유다. 그것은 우선, 너희를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너희가 갖지 못할 뭔가가 존재한다는 두려움, 잃게 될 뭔가를 지니고 있다는 두려움, 어떤 것 없이는 행복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서.
둘째로, ‘필요로 하지 않음’은 너희를 분노에서 자유롭게 한다. 분노는 선언된 두려움이다. 그러니 두려워 할 일이 없다면, 분노할 일도 없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도 너희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원함은 필요가 아니라 단순히 선호에 지나지 않기에. 그러니 너희는 그것을 갖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두려워하는 일이 없고, 따라서 화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들이 한다 해도 너희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특정한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걸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니, 따라서 화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너희는 누군가의 친절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그가 불친절하다고 해서 화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그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누가 너희에게 잔혹하게 해를 입히거나 손해를 입히려 해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처신하는 걸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이 너희를 해칠 수 없음을 너희가 확신할 것이기에.
너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누가 너희 생명을 가져가려 해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에게서 두려움이 사라지면, 나머지 것들도 사라질 수 있으니, 너희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내면의 직관으로 너희가 창조했던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아니 더 중요한 것으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것이다.
너희가 내면의 평화를 발견할 때, 어떤 사람이나 장소나 물건이나, 조건이나 환경이나 상황의 있고 없음은 너희 마음 상태의 창조자일 수 없고, 너희 존재 체험의 원인일 수 없다.
이것이 너희가 몸의 전부를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천만에, 너희는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방식으로 너희 육신과 육신의 기쁨 속에서 완전해짐을 체험할 것이다.
하지만 몸의 일에 대한 너희의 몰두는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일 것이니, 너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몸의 감각을 체험할 것이다. 행복을 느끼거나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도록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선택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고 발견하는 이 간단한 한 가지 변화를 모두가 이뤄낼 때, 전쟁은 완전히 끝나고, 갈등은 사라지며, 부당함은 차단되고, 세상에는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필요하거나 가능한 다른 공식은 없다. 세계 평화는 개인의 일이다!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변화이다.
너희는 너희 정부들이 평화와 자유와 국내 질서를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너희가 고안해낸 대로의 정부들은 전혀 이렇게 하지 못함을 관찰한다. 오히려 너희 정부들은 너희를 전쟁과, 점점 확대되어 가는 자유의 부족, 그리고 국내 폭동과 사변으로 데려간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 한 사람이나 사회가 무엇을 ‘즐거움’이라 부르는지에 따라 그 존재나 사회가 얼마나 높이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 걸 떠올려 보라. 나는 여기에 덧붙여, 그 존재나 사회가 무엇을 자신에게 이바지한다고 선언하는지에 따라서도 그 진화 정도를 알 수 있다고 말하려 한다.
전쟁에 나서고 다른 존재들을 죽이는 것이 너희에게 이바지한다면, 너희는 그렇게 할 것이다.
너희 중의 연장자들과 현자들은 종종 기념비를 세우고 특별한 날과 엄숙한 의식을 만들어 너희의 과거를, 너희의 전쟁과 너희의 대학살과 너희의 모든 불명예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길 권한다. 이런 걸 왜 기념해야 하지? 너희는 물을지 모른다. 왜 과거를 계속 되살리는 거지? 그러면 노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