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海所以爲百谷之王 (강해소이위백곡지왕 )

以其能爲百谷下(이기능위백곡하)

是以能爲百谷王(시이능위백곡왕)

聖人之在民前也 以身後之(성인지재민전야 이신후지)

其在民上也 以言下之(기재민상야 이언하지)

其在民上也 民不厚也(기재민상야 민불후야)

其在民前也 民不害也(기재민전야 민불해야)

天下樂進而不厭(천하락진이불염)

以其不爭(이기부쟁)

故天下莫能與之爭(고천하막능여지쟁)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계곡의 왕인 까닭은

그들이 계곡(백성)들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히 계곡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성인이 민중들 앞에 있을 때에는

그 몸은(입지) 민중들 뒤에 둡니다.

민중들 위에 있을 때에는 말로써 낮춥니다.

그래서 성인이 민중들 위에 있어도

민중들은 부담스러워하지 아니합니다.

민중들 앞에 있어도 민중들은 해롭다 여기지 아니합니다.

천하가 (성인을) 즐거이 밀어주고, 싫다하지 않는다.

성인은 다투려 하지 아니하므로

세상 누구도 능히 그와 다툴 수가 없습니다.

 

 ◐ 해설 

노자는 여기서 강과 바다처럼 ‘겸손’과 ‘포용’을 시사하고 있군요.

오만 것을 다 받아들여 하나가 되게 하는 바다는

‘다 받아들인다’고 하여 ‘다 바다’되어 수용하는 ‘바다’라고...

 

그런데 국민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국민에게 은혜를 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요.(아닌 경우 빼고)

물론 공무원, 재벌, 판검사, 의사, 학자,,,,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분들이 앞부분에서의 智 辯 巧 利 僞 慮 하는 부류들이지요.

그 부류들은 평상시에는 겸손하게 처신을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개인적으로 접해보면 매우 건설적이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이 되면 최대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하지요. 물론 단지 자신들의 생존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요...

한걸음 나아가 자신들은 단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런 것을 위(爲)이고 위(僞)일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노자는 강, 바다처럼 처신을 하라고...

봉사하려고 하지 말고, 봉사하는 존재가 되라고..

생색을 내려고 하지 말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존재가 되라구...

사대(事大)가 아니라 오히려 사소(事小)의 섬기는 존재가 되라고,

민중의 under(밑에) stand(서서)하여 백성을 understand(이해)하는 존재가 되라구...

그게 자신을 높이려고 낮추는 게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존재가 되고, 그에서 드러나는 처신을 하라고...

‘作而不始’ ‘爲而不恃’ ‘成而不居’하여 겸허(謙虛)와 부쟁(不爭)의 덕을 갖출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꼴찌가 되고자 하면 첫째가 된다’라고 하였고,

어리석고 빈천하고 가난한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불거(不居)하는 덕으로 경쟁력을 갖추면

저절로 섬김을 받는 존재로...(에구, 저는 아직도 권력에의 의지가 있는...)

 

그리고 부쟁(不爭)은 고도의 통치 방식으로 어둠을 이해하고 다룰 줄은 알지만, 오히려 상대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식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사실상 싸움이란 게 있을 수 없는 상태, 즉 싸움이 아닌 선의(善意) 경쟁 ‘기회’로서 기능하게 하는 도략으로 다스리는 것이지요.

이런 성인(聖人마스터)은 상대들의 요구를 미리 알아서 도와주기에(事小) 과격한 요청이라는 형태를 지닌 ‘공격’이나 ‘싸움’은 일어날 수가 없지요.

그럼에도 공격이 있다면...(이것은 다음 기회로..)

항상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