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실천
絶智棄辯 民利百倍 (절지기변 민리백배)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교기리 도적무유)
絶僞棄慮 民復季子 (절위기려 민복계자}
三言以爲辯不足 (삼언이위변불족)
或命之 或乎屬 (혹명지 혹호속 )
視素保樸 少私寡欲 (시소보박 소사과욕)
지모(智謀)를 그만두고, 궤변을(설득을 위한 그럴듯한 말장난) 포기하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로 늘어날 것이다.
교묘함을 그만두고, 이익을 포기하면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거짓을 그만두고, (엉터리)선심을(愚民化) 포기하면
백성이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위 세 말은 (뜻을) 밝히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져서,
혹 밝히려고 한다면, (아래 두 가지로) 엮는(압축하는) 것은 어떠할까.
순수함을 드러내고 소박함을 보존하고
사사로움(私有)을 적게 하고 욕구(欲求)를 줄여라.(私利私慾)
◐ 해설 ◐
전체적으로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들의 자세에 관련한 것이군요.
우선 辯을 위한 智, 利을 위한 巧, 慮을 위한 僞가 있으며,
智 -> 辯 -> 巧 -> 利 -> 僞 -> 慮 의 순차적인 맥락이 있군요.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정치인’이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권한이나 이권을 유지하려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일을 꾸미거나, 여러 구실을 끌어와서 사실을 왜곡하는 의도를 그만두기만 해도, 국민들이 훨씬 효과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 공무원들이 있는 그대로의 문제점을 사실대로 인식해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면 장기적으로 문제점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자명하군요.
도둑이 생기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이나, 상대적인 빈곤에서도 생기지만, 도적은 불노소득이 있는 곳이나 이권(돈이 되는)이 있는 곳에 항상 하이에나나 불나방처럼 눈먼 돈을 노리는 무리들이 모여들지요.(공금을 도적질)
그러나 그 권한의 주체들이 당당하고 자신들에게 사사로이 돌아올 수도 있는 이익을 포기하여, 투명하게 일을 진행하여 모범을 보이면, 공짜로 이익을 취하는 부류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여 사회기풍이 제대로 서서 도적(부정부패)들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군요.
또 뭔가 이권을 노리고 쓸데없는 일을 꾸미는 행위를 그만두면(자연스럽게 내버려두면), 인간 각자의 마음 깊은 곳(가슴)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자율이 싹을 틔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규제하는 자치(自治)가 시작된다.
그러면 국민은 어린이들처럼 순수해지고 순박해진다고 하군요.
관찰해보면 어린이들이 모이면 그들끼리 알아서 논다. 그들은 정치적이지도 않고, 위장 위선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놀이로 여겨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한다.(쥐를 비롯한 동물세계도 끼리끼리 자연스럽게 적응한다.) 이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또 공인들이 사리사욕을 부리면 조그만 권한이 있다고 여기는 부류들 누구나 더욱 자신의 배를 채우려들 겁니다. 따라서 반드시 부정부패가 판치게 되겠지요.
그래서 노자는 오히려 사유(私有)물을 줄이고, 공유(共有)하는 태도를 가지고, 나아가 공유(公有)하는 공인(公人)이 되기를 권유하는 것이지요.
또 공인은 과욕(過慾)을 부리지 말고 과욕(寡慾)하기를 제안하지요.
뭔가를 하려고(欲)하지 말고, 상대로 하여금 진정 자립하고 힘있게 하여 도움이 되게끔 마음쓰라는 것이지요.
국민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을 줄이라는 표현이지요.
따라서 국민은 공인(공무원)들이 뭔가 해주는 것(특히 선심성)에 의존하지 말아야......


신나이에서 '정부'에 관련하여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지도자를 뽑고, 그런 정부를 지지하고, 그런 종교를 받아들인다.
“날 편하게 해줘. 뭘 해야 할지 말해달라고.”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원하는 바다. 나는 어디에 앉아야 하지? 언제 일어서야 하지? 경례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돈은 언제 내야 하지? 너는 내가 뭘 하길 원하지?
규칙은 뭐지? 내가 지켜야 할 경계선은 어디지? 나에게 말해 줘, 말해 달라고. 그렇게 할 테니 누가 그냥 말만 해줘!
자기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외정책을 실시하는 게 나쁜 겁니까?
아니다. 첫째로 내 관점에서는 어떤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그 용어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이해하니, 그 용어의 너희 식 맥락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나쁘다는 용어를 너희가 되려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아 너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너와 이야기할 때 좋다 나쁘다는 용어를 사용해온 방식이다. 그것은 항상 이런 맥락에서만 사용된다. 사실 좋거나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래서 그런 맥락관계에서 보면, 아니다, 대외정책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부적절 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듯이 가장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렇게 가장한다. 그들은 실제로는 일련의 이유들 때문에 행동을 취하거나 취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근거로는 다른 일련의 이유들을 제시한다.
왜죠? 왜 대다수 국가들이 그렇게 하는 겁니까?
대다수 대외정책들의 진짜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 국민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리란 걸 정부가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의 정부라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않는 정부는 거의 없다. 사기는 정부의 일부이다. 정부가 자신의 결정을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며 국민을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지금 자신들을 다스리는 방식대로 다스려지길 원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기에. 아니 아예 다스림 자체를 원할 국민도 거의 없을 것이기에.
사실 이런 걸 믿게 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의 어리석음은 대다수 국민들 눈에 확연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의 충성을 붙들어두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 정부란 배짱 좋게, 그리고 충분히 오랫동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는 공리(公理)의 정확성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초상화가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지 절대 국민들이 알게 하지 않는다. 또 자신들이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 하려는 일이 그 자리를 지키는 일뿐이라는 것도.
진실과 정치는 섞이지 않으며 섞일 수도 없다. 정치란 건 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말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을 말하는 기술이며, 그것을 오직 옳은 것으로만 말하는 기술이기에.
모든 정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정치술이라는 게 실제적 기법이라는 데 있다. 정치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단히 노골적으로 알아챈다. 그것은 사람들이란 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임을 간단하게 눈치 챈다. 그러니 정치란 것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가 곧 너희의 이익임을 너희에게 믿게 만드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고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뭔가를 주는 정책을 짜내는 데 그토록 능수능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래 정부는 대단히 한정된 역할만을 가졌다. 정부의 목적은 단순히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제공하는’ 일을 더했다. 정부가 국민의 보호자일 뿐 아니라 국민의 제공자가 되기 시작했을 때, 정부는 사회를 유지하지 않고 그것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란 건 그냥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할뿐이지 않습니까? 정부는 단지 체계를 제공할 뿐이지 않습니까? 사회적 범위에서 사람들이 자활하게끔 해주는 체계를요.
예를 들면 우리 미국에서는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 기회의 중요성, 어린이의 존엄성에 대단히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불하는 법률들을 만들고, 또 그런 정책들을 세우도록 정부에 요구해 왔습니다. 그들이 정년이 지나고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요. 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취업기회와 주택취득 기회를 보장하는 법들을 만들고, 그런 정책들을 요구하죠. 우리와 다른 사람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해서요. 그리고 우리는 아동 노동법을 근간으로 하여, 한 주의 어린이들이 그 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이 존엄을 잃지 않는 기본 의식주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주는 정책들을 요구합니다.
그런 법률들은 너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부양할 때, 너희는 그들의 가장 위대한 존엄성을 빼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그들 스스로 자활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들의 능력과 창조성, 집중력의 발휘라는 존엄성을. 이것은 반드시 잡아야 하는 섬세한 균형점이다. 너희 국민은 오로지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가는 것만을 아는 듯 싶다. 너희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 몽땅 다해주기를 바라거나, 내일 당장이라도 정부 정책들을 몽땅 다 폐기하고, 법률들을 몽땅 다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그것은 그 소수의 동기에 따라 다르고, 그 동기의 명확성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수들 스스로 자신들을 다스리게 놔두는 것보다 더 다수에게 봉사하는 건 없다.
무정부주의로군요. 그렇게 해서는 아무 일도 안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부가 끊임없이 너희에게 말해준다면, 너희는 성장하여 위대해질 수 없다.
정부― 제가 말하는 정부는 우리 자신을 다스리도록 우리가 선택해온 법이란 뜻입니다― 란 건 한 사회의 위대성(혹은 그 위대성의 결여)을 반영하니, 위대한 사회일수록 위대한 법들을 통과시키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아주 소수의 법들만을. 위대한 사회라면 극소수의 법들밖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짜로 아무 법도 없는 사회는 ‘힘이 정의’인 미개사회입니다. 법이란 건 놀이터를 평평하게 골라, 그 힘의 강약에 관계없이 진실로 옳은 것이 지배할 수 있게 하려는 인간의 시도입니다. 우리가 서로 동의하는 행동 규약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런 행동 규약도, 아무런 동의도 없는 세상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의 동의와 규약들이 자기이익에 대한 더 수준 높은 이해와 더 위대한 규정에 근거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대개의 법률들이 실제로 이야기하는 내용이란 건 너희 중에 가장 권력 있는 자들이 기득권으로 지니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움을 주는 것이 오히려 권능을 빼앗게 되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게 되는 때는 요?
너희의 도움이 신속한 자립이 아니라 계속적인 의존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제공될 때.
너희가 자비를 명분으로 하여,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너희에게 의존하기 시작하도록 놔둘 때.
이것은 자비가 아니라 강제이다. 그런 종류의 도움은 진실로 강제라는 동력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이기에. 그런데 여기서 이 차이는 대단히 미묘해서, 때로는 너희는 자신이 시동을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너희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그냥 다른 사람을 도울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단지 너희 자신의 자부심만 키우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남들이 너희에게 의존하도록 놔두면 놔두는 만큼, 그것은 그들이 너희를 힘있는 존재로 만들도록 놔두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는 당연히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도움은 약자를 유혹하는 최음제이다.
목표는 약한 사람이 더 약해지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약한 사람이 강해지도록 돕는 데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많은 복지정책들이 지닌 문제가 이것이다. 그 정책들도 주로 뒤의 방식이 아니라 앞의 방식으로 일한다. 정부 정책이란 건 자기 지속성을 갖기 마련이니, 지원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만큼이나 정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 그 정책들의 목적일 수 있다.
모든 정부 지원에 한계가 있다면, 국민들은 정말로 필요할 때 도움을 받더라도, 그 도움에 중독 되어 그것을 자신의 자립과 맞바꾸지 않게 될 것이다.
정부는 도움이 힘인 걸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비난받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하는 이유이다. 정부가 돕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수록 정부를 돕는 사람들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양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부양한다.
그렇다면 부의 재분배는 없어야겠군요. 공산당 선언은 사탄의 짓이고요.
물론 사탄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네 말뜻을 이해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주장 뒤에 깔린 사상은 사악하지 않다. 그것은 아름답다. 그것은 그냥 너희는 너희 형제의 파수꾼이라는 속담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해질 수 있는 것은 이 아름다운 사상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공유는 정부가 강요하는 칙령이 아니라 생활방식이어야 한다. 공유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성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