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以聖人 (시이성인)

居無爲之事 行不言之敎 (거무위지사 행부언지교)

萬物 作而不始也 만물 (작이불시야)

爲而不恃也 成而不居也 (위이부시야 성이불거야)

夫唯弗居 是以不去也 (부유불거 시이불거야)


♠ 마무리 부분 : 신성한 이분법의 존재 됨됨이

⌖ 居無爲之事에서

일을 대하거나 처리할 때의 방식이 무위(無爲)라고...

여기에서 ‘無爲’는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쉬운 게 아니어서

독립 주제로 정하여 따로 설명을 제대로 하겠습니다.


⌖ 行不言之敎는

말이 아닌 가르침을 행한다는 것은 특정 방식으로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것이지요. 솔선수범을 포함하여, 지식이 아닌 지혜, 담론(談論)이 아닌 실천으로 교화하는 것이지요. 즉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이론만을 전달하는 주입식 가르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지식적 우월주의로 혹은 일방적인 말로 표현하는 말로써 가르치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의 맥락이 중심되어서, 급기야 가르치는 사람도 사라지고 듣는 이도 사라지는...

이런 것이 소크라테스 같은 애지(愛智)자들이 대화로써 산파술을 행하는 것과 유사하답니다. (때에 적절한) 말이란 도구를 사용은 하지만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일깨워서 기억하게 만드는 가리키는 것이지요.

언어를 도구로써 사용하고, 말을 하지만 단순한 말이 아닌 그 이상의 가르침인 것이지요. 그 방식은 표현된 말이 아닌 열정이며, 인간 됨됨이로 다가감이며, 마음의 존을 울리고,  끈기와 기다림으로써 스스로 기억하고 깨닫게 함이며, 영혼을 일깨우는 방식인 것이지요.

오직 자신이 몸소 터득한 것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하는 삼투(滲透)방식이기도 하고, ‘말씀이 육이 되어’이고,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인 것이지요.


⌖ ‘作而不始’ ‘爲而不恃’ ‘成而不居’ 에서

作(시작) -> 爲(실행) -> 成(결과) 이라는 창조 과정의 연속성 맥락으로 주체는 성인이고 만물(萬物)만사(萬事)가 객체로서 생략이 되어 있군요.

재구성하면
聖人 作(萬物)而不始
聖人 爲(萬事)而不恃
聖人 成(萬物萬事)而不居


⌖ 聖人 作(萬物)而不始 : 성인은 (만물을) 만들되 (함부로) 시작하지 않고...

시작이 없이 뭔가를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노자는 ‘豫’, ‘猶’, ‘嗇’에서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시작을 하라는 뜻이군요.

군자는 견기이작(見機而作)이라고 일을 조처함에 기미(幾微)를 보고하라는 것처럼 매사에서 실행하기 전에 일의 귀결이 느낌으로 떠오르지 않으면 그 시작을 유보하는 태도랍니다. 스티븐 코비의 2번째 습관인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서 시작’(Begin with the End in Mind)하는 것과 통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고, 실재로는 원인과 결과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는 까닭인 것이지요.

전체 맥락을 자각하면서 일을 행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이 더 진화하고 새롭게 변화하기 위한 분별력의 기회로 활용하라는 것이랍니다. 이런 게 순리(신의 뜻)에 합당한지를 검토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태도인 것이지요.


⌖ 聖人 爲(萬事)而不恃 : (만사를 의도) 하면서 기대하지 않으며

기미를 보고 신중하게 일을 시작하고 나서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그 결과에 기대(恃)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지요.

행하긴 하지만 투자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아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진인사대천명의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고, 특정 결과를 필요로 하는 기대의 바다에서 벗어나 조건없이 사랑을 베푸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라는 것이지요.

완벽한 우주가 매사에 제대로 귀결을 주심을 미리 감사하는 것이며, 신이 알아서 하도록 허용하고, 그 귀결을 신뢰하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지요.


⌖ 聖人 成(萬物萬事)而不居 : (만사 만물을) 이루되 머물지 않는다.

장자방이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는 큰 공을 세워놓고도 홀연히 상산사호와 더불어 세상을 떠나서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반대로 한신은 괴철의 부탁을 따르지 않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유방을 도와서 통일 후에 논공행상에 따라 제나라의 왕이 되었으나 결국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었다.

결과를 이루어도 그것을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또 초발심을 잃지 말고, 삶을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될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지요.


⌖ 弗居 不去

결국 공을 이루어도 차지하려 하지 않으며, 소유하려 하지 않기에 잃는 것이 없습니다.(체험의 교훈은 남는다) 만일 성공에 안주하여 변화를 게을리 하면 “자신의 월계관에 안주한다”는 것이니 이런 게 바로 성장을 가로 막는 것이지요.

월계관에 안주하지도 않고, 또 실패에 머물지도 않으니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안전지대를 벗어남으로써 고귀한 선택으로써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자는 결국 잃는 결과만이...

우주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아무도 남는 게 없다. (실패의 교훈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