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0.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어떠한 삶을 살아왔던가에 관계없이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지난 일생을 회고하면서 평소와는 다른 사고와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회광반조(回光返照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짐)와 비슷한 현상으로서, 사람이 죽기 전에 잠깐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차원적 의식의 영향을 받아, 그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체험의 의미와 깨달은 내용을 정리 하게 되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에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도 나타나 있으며, 한편 지난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옥중에서 쓴 수양록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 김 전 중앙정보부장의 수양록
1980년 1월21일
불도에 귀의하여 마음에 평온을 찾았다. 육신을 어떻게 다루던 알 바 아니다. 마음의 본성은 공(空)이다. 본성만 확고히 잊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1월22일
고등군재를 대기하면서 어젯밤 꿈에 상(想)자에서 심(心)자를 떼라는 계시를 받고 아침에 깊이 생각에 잠김. 무심 하라는 계시다. 불심은 사람이 무심하면 곧 볼 수 있다. 매사에 무심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무슨 일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사생관의 초월도 무심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천지가 뒤집어져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무심하다.
1월25일
군법회의도 끝나고 이제 최종최후의 준비를 해야겠다. 불심에 귀의해서 평화로운 최후가 되도록 계속 노력한다. 이미 마음의 안정은 찾았다. 금일부터 더욱 불법에 정진한다. 성불만이 최고의 희망이다. 나는 기필코 이룰 것이다. 변호사 3인 다녀가다. 잠시 졸았다. 꿈을 꾸었다. 마음의 자성(自性 본성)을 관리하라고 했다. 성불성아 가까워지는 듯. 조용한 하루를 지냈다. 마음은 평온하다. 모든 잡념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2월28일(음력 12월11일)
만일 내가 사형선고 없이 견성할 수 있었겠는가. 육신 즉 유한생명을 바치고 무한생명 부처를 찾았다. 불행이 지혜의 눈으로 보면 곧 행복이 된다는 진리를 입증해 주었다.
***
위와 같은 두 분의 글을 분석해보면, 그 요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도 있습니다.
*. 사람의 삶과 죽음은 자연현상(섭리)의 일환으로서 슬퍼할 일이 아니다.
*. 생사(生死) 및 모든 일은 운명(섭리)에 따라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미안해하거나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 마음의 본성은 공(空)이다. 무심(無心)하게 되면 해탈할 수 있다.
*. 시련이나 고통(불행)은 우리를 견성(見性)으로 이끄는 체험들이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낱말 뜻 되새기기>
** 자연(自然):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 섭리(攝理):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 기(氣). 자연. 도(道), 진여(眞如), 운명
** 운명(運命):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 공(空): “나”라는 개체적 실체가 없음을 이르는 말.
** 무심(無心): 마음속을 오가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들이 망상(妄想)일뿐임을 알고, 이에 집착하거나 끌려 다니지 않으며 이를 관조(觀照) 하는 상태.
** 관조(觀照): 지혜로 모든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비추어 봄
** 견성(見性):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본성을 깨달아 앎
한편 위에 열거된 두 분의 유서나 수양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글의 성격을 보면, 이는 현대인들의 정서와는 달리 일원론적(一元論的) 세계관(世界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0. 지구촌 인류의 세계관
이 지구상에서 살아온 인류가 수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온 세계관(世界觀 자연적 세계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류 대부분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이원론(二元論) 혹은 다원론적(多元論的) 세계관”이 있으며, 이와 대립되는 견해로서 오늘의 인류가 신비주의자들이라 일컫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라 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이 있습니다.
다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1. 우주의 모든 존재는 제 각각 분리된 별개의 존재들이다. 2. 내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별개의 자아인 내가 하고 있다.” 라는 관념 속에서 인위적(人爲的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로서 내가 한다는 마음으로 벌이는 짓이나 행동)이고 이성적(理性的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이나 행동)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1.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용하는 하나인 존재이다. 2. 우리의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이자 전체인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라는 관념 속에서 무위 자연적(無爲自然的 내 힘으로 내가 한다는 생각이나 판단이 가미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본능적 (本能的 경험이나 학습 등을 통하여 후천적으로 터득한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 고유한 행동양식)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의 삶속에서는 위와 같은 두 가지 세계관이 엄연히 함께 존재하였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는 위의 두 가지 세계관 중 다원론적 세계관인 인위적 이성적 삶만이 전부인양 알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0. 일원론적 세계관
일원론적 세계관은 주로 인류가 성인(聖人)이라고 추앙하고 있는 분들이나 선각자(先覺者)들에 의해 계속해서 수없이 이 세상에 전해졌지만, 그동안의 인류는 그러한 세계관을 받아들일만한 의식수준이 아니었기에, 그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왜곡된 체 오늘날까지 전해진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널리 알려진 내용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인도 힌두교의 세계관
인도의 베단타학파에서는 우주의 존재현상은 하나인 유일 실재자(唯一實在者, 섭리)의 환영(幻影:māyā)에 불과하다고 역설하였으며, 개아(個我)도 그 본체(本體)는 유일 실재자와 동일한 것으로서 개아가 유일 실재자와 동일함을 깨닫게 되면, 무명(無明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은 사라지고 해탈(解脫)하여 일체의 고뇌는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인도 사람들이 힌두교와 요가 계통 수행에 있어 최고의 경전으로 알고 있는 “바가바드기타(신의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신의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타고난 본성적인 기운의 흐름에 의해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은 ‘내가 행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성적인 기운의 흐름에 따라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위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운의 상호작용에 의해 저절로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행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행위가 세 가지 기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에 집착 한다.”
-. 노자의 세계관
인간존재의 근본적 이치를 탐구하는 도(道)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노자는, 인류에게 도와 무위 자연적 삶을 언급한 최초의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道)란 무엇인가? 도란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 변화 소멸의 원리이자 근원(根源)과 섭리(攝理)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노자에 의하면 만물은 모두 이 도에서 생성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에 있어서 평등하며 차별이 없다고 하여 모든 상대적인 가치 평가, 가치 판단을 배격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하나인 존재임으로, 너와 나, 하느님과 인간, 천사와 악마, 친구와 원수 등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판단하여 구분 짓는,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分別 모든 사물과 존재의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매달려 판단하고 사유·추론하는 의식 작용)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노자는 도를 따르고 도를 지키는 것을 덕(德)이라 하며, 따라서 덕은 도처럼 무위(無爲)여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섭리)를 따르고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함”의 인위적 삶에서 벗어나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무위 자연적 삶을 영위하라 한 것입니다.
또한 그가 말하는 자연은 바로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스스로 그러하고[自己如此],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정신의 독립이며, 사물의 실상과 합일로써 얻어지는 정신적 원만성입니다. 즉,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되어지는 대로 사는 삶이 무위자연인 것입니다.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보태는 것이고, 도를 함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서 함이 없음[無爲]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위자연은 인식의 오류로 말미암아 혼란해진 자기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방법이며, 동시에 세상이 저절로 다스려지는 법인 것입니다.
-. 석가여래의 세계관
모든 사물과 현상은 만유의 본체인 진여(眞如)에서 나온 것으로서 인연에 의해 잠시 현재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은 고정적이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찰나의 모습으로 실체가 없는 환상일 뿐임(諸行無常 제행무상).
모든 것이 고정된 항상 그러한 실체가 없듯이, 나라는 존재 또한 무수한 인연들에 의한 작용으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환상일 뿐, 고정된 나라는 건 없음(諸法無我 제법무아).
따라서 이렇게 실체라고 할 것이 없이 변화하는 사물의 상태를 가리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 생멸불이(生滅不二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님),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여럿 있고 여럿 속에 하나있음),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임)이라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석가여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사물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즐거워할 필요도 없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생이 일어나고 죽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대는 여여함 속에서, 진여(眞如)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삶이 어떻게 움직여 가는지를 지켜보라. 이것이 삶이 흘러가는 길이다.>
위 말은 달리 해석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몸과 우주 삼라만상을 통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신, 기독교에서 말하는 섭리,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에 의해 저절로 일어난다. 내가 함이 아니다. 그래서 즐거워할 필요도 없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대는 마음속을 오가는 생각과 감정 등에 끌려 다니지 말고 진여와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을 그냥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가운데, 삶이 어떻게 움직여 가는지를 지켜보라. 이것이 인간 부처의 삶이다.”
석가여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일어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할 수 없다. 바다를 향해 강물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 여여이며 진여이다. 진여는 우리 자신의 본성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흘러갈 뿐, 진여 속에서 흔들림이 없다.”
어떤 사람이 와서 석가여래에게 욕을 하고 꾸짖었다. 그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에 제자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다.
"왜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습니까?”
석가여래가 말했다.
“그것은 그의 진여이다. 그것은 그의 행동 방식이다. 내가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은 나의 진여이다. 나는 그 사람보다 더 거룩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보다 더 고상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나인 우리의 진여가 그와 나에게서 나타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번은 내가 숲을 지나가는데 나뭇가지 하나가 내 위로 떨어졌다. 그 나뭇가지가 나를 다치게 했으므로 내가 그 나뭇가지를 때려 주어야 하겠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나뭇가지는 나를 헤치겠다는 생각이 없다. 그것은 단지 자연적인 사고인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욕한다면 그것도 나뭇가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단지 거기에 있었고 그는 화가 났을 뿐이다. 만약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본성이다. 그는 그의 본성을 따른 것이고 나는 내 본성을 따른 것이다."
위 상황을 달리 해석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사물의 본성(진여)에 의해 저절로 일어난다. 우리는 일어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와서 석가여래에게 욕을 하고 꾸짖었다. 석가여래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제자들은 석가여래에게 왜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냐고 묻는다.
우리의 진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방식은, 그 사람 사람의 연기(緣起 모든 현상이 생기 소멸하는 법칙)에 따라 다르다. 하나인 진여가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무례를 범하고, 제자들을 통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석가여래를 통해서는 부처의 모습인 관조의 자세를 연출한 것이다.
여기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표현된 예의나 무례, 의문과 답, 미망과 관조는 분별일 뿐, 실상(實相)은 하나인 진여가 또 다른 나인 여러 사람의 몸을 통하여, 연기(緣起)에 따라 한 편의 드라마를 구현해나가는 작용이 일어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실상을 알고 보면 모든 것은 변화하는 진여의 또 다른 모습일 뿐,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도 없고 무례한 사람도 없으며, 의문을 말하는 사람도 없고 답을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미망에 빠져있는 사람도 없고 관조하는 사람도 없는, 모든 것이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인 것이다.”
-. 예수의 세계관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는 하나인 존재이며, 모든 일은 에고인 내가 함이 아니라 섭리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라는 말은, 곧 신과 인간은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인 존재로서, 인간이 저마다 신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라는 말은, 곧 예수의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인간인 예수가 함이 아니라, 예수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역사(役事)하고 계심의 이치를 말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예수께서는 수 없이 말씀하셨으나 그 당시 사람들의 인식수준으로는 이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함으로, 이를 납득시키고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을 달리 풀이한다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 누구든지 나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 별도의 내가 있어 이 모든 일을 자기가 한다는 생각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 자기에게 체험되는 좋은 일이나 궂은 일 모두를
*지고 - 하느님의 은총으로 알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허용하며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처럼 살아가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그 생명체들이 걱정하고 구하지 않더라도 체험에 필요한 만큼 저절로 주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의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공중의 날아가는 새를 보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축사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며 하느님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않더냐.
너희가 어찌 의복을 걱정하느냐. 들판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옷을 마련하고자 수고도 안하고 길쌈도 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온갖 영화도, 입은 옷이 이 꽃 하나만 하지 못하였느니라.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잠시 살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느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할 너희를 입히지 않을까 보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런 걱정은, 너희의 체험에 적당한 만큼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애써 힘들여 구하는 것이니라.
너희는 먼저 네 안의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역사하심을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 거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이 너희에게 저절로 주어지리라. 그러니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요 한 순간의 괴로움은 그 순간에 족하니라.”
0. 일원론적으로 살펴본 인간 존재의 근본이치
나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는데 있어 나라는 존재의 존재영역을 인간으로서의 입장에만 국한시켜 바라본다면, 그것은 나의 일부분만을 살펴보는 것이므로 미시적(微視的)이다 할 것이며, 나라는 존재의 존재영역을 신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거시적(巨視的)인 안목의 존재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신(전체)의 입장에서 본 존재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 등 우주 삼라만상이 창조되기 전에, 우리가 절대자(絶對者 스스로 존재하면서 그 자신 혼자만으로 완전한 것)라고 알고 있는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고 그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신은 스스로 위대하고 전지전능하며 사랑의 존재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정작 자신의 존재의미(存在意味)를 낱낱이 느끼고 즐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던 신은, 어느 때 부터인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체험(體驗)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감나게 느끼고 즐기고 이를 확장시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위대하며 전지전능한 사랑의 존재라 하지만, 혼자서만 존재했을 때는 위대하며 전지전능함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자신 외에 상대적 대립물이 존재하는 가운데 체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위대함과 전지전능함이 의미를 갖게 되어, 자신의 존재의미를 실감나게 느끼고 즐길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신이 신으로 체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설이나 드라마의 필요 요소처럼 배경(무대) 인물(배우) 사건(각본이나 시나리오) 등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자신뿐임으로 신은 체험을 위해 부득이 자신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가상(假象 주관적으로는 실제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 현상)적이고 환상적인 드라마적 요소를 무수히 창조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은 어느 순간 오늘의 과학자들이 소위 빅뱅 이론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사건을 통하여 가상적 신(神) 체험 시스템을 구축하였던바,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인 것입니다.
온 우주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행성과 이 지구촌 여러분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은 그 드라마의 배경이요 무대이고, 온 우주에 생존하고 있는 모든 존재와 여러분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우들이며,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겪고 있는 사건들과 온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은 그 드라마의 각본이나 시나리오가 구현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 속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그 수많은 체험무대 중에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행성 지구이며, 이 지구촌은 인류가 살아가는 여러 행성 중에서도 전 우주의 다른 행성과는 다른 특별한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의 체험을 다양화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이 지구촌에 작용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는 다차원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주 변화법칙중의 하나로서, 이 우주의 지구촌에만 작용되는 특별한 삶(드라마)의 형태입니다.
물론 다른 우주 다른 행성의 경우에도 그 우주 그 행성 특유의 우주 변화법칙이 작용하지만, 다른 행성들은 대부분 거의 비슷한 의식수준의 영혼들이 크게 변하지 않는 느슨한 삶을 즐기는 무대인 반면, 이 지구촌은 다양한 의식수준의 영혼들이 오가며 각양각색의 극단적인 체험을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이 지구촌에서 태어나는 사람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체험 각본은, 다른 행성들에 비해 혹독한 고통을 담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특유의 조건 때문에 영혼의 진화(進化) 과정에서 이 지구촌을 찾는 영혼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혹독한 고통을 체험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구촌에서는 그 어느 행성에서보다 빠른 진화(깨달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이 지구촌의 삶을 체험하고자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에고(ego 자아)는 전체이자 참 나인 신의 분신으로서, 신의 체험을 위한 통로의 일환인 사람의 몸속에서 영혼이자 한 의식으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영혼은 그 의식수준에 따라 자신의 진화에 가장 적합한 체험 드라마를 지닌 사람의 몸을 선택하여 태어나, 그 몸에서 일어나는 행동과 생각 감정 느낌 등을 “내가 함”으로 인식하며 바라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존재의 근본이치를 깨닫지 못한 영혼은 그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액면 그대로 내가 함으로 인식하며 계속해서 고통스런 인위적 삶을 살아가지만, 깨달은 영혼은 모든 것이 참 나가 일으키는 체험을 위한 환상임을 알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가운데 무위자연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정체(正體 본디의 참모습)를 망각(忘却)한 체 이번 생에서 000이나 000이라고 이름 지어져 태어나,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갖가지 유형의 사랑과 갈등을 체험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사연도, 이를 궁극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실상 전체인 신의 체험의도가 구체화된 또 한편의 환상적 드라마들일 뿐인 것입니다.
위와 같이 극적인 체험의 고비 고비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변화하는 자신과 주변상황을 뒤돌아보면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는바, 그때마다 “인생은 00이다. 나란 존재는 00이다”라고 이를 새로이 깨달아 나가면서 자신의 가치관(價値觀)을 바꿔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아픔을 통한 성숙”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이 지구촌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 인류 모두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나아가는 수행자(修行者)들이라 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바로 위와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이치를 많은 부분 깨달은 내용이기에, 그 일생이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 “일원론적 세계관”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시는 분은, 필자가 운영하는 선무아리랑도회 사이트 (http://sunmuarirangdo.com/) 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네이버 검색란에서 “선무아리랑도회”를 검색해도 됨)
0. 이 땅에 지상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이 땅에 지상 천국을 건설하는 것일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하던 목표도 그랬고 이명박 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목표도 다를 바 없지만, 대립과 반목이 거듭되고 있는 오늘의 사회와 정치 현실을 돌아볼 때, 지상천국의 건설은 까마득하게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그 답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 할 수 없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
이 말씀을 달리 풀이해본다면,
*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다 - 천국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뿐더러, 어느 날 갑자기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 할 수 없다 - 천국이라는 별도의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 너희가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알고 모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 끌려 다니며 천국을 밖에서 건설하고자 한다면 그 어디에도 천국을 건설할 수 없을 것이나, 네 안에 하느님이 계셔 모든 일을 역사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면, 온 세상 모든 일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이루어지는 체험을 위한 환상임을 알고서, 나 예수처럼 하느님과 하나 되어 이를 즐기게 되는 천국의 삶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는 지상천국의 건설은, 다원론적인 삶을 통해서는 건설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일원론적인 삶을 생활화할 때만,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 지상천국임을 알고 대 자유 속에서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인간존재의 근본이치를 알고 일원론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적게는 그 사람의 운명이 변화하게 되고 크게는 그 나라의 운명이 변화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 지구촌의 운명이 바뀌고 또 바뀌게 되어, 그야말로 이 지구촌은 모든 사람들의 염원대로 지상 천국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0. 인생을 환상으로 보며 관조하는 삶
예수의 말씀 중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만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이 있지만, 다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납득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상대를 이웃이나 원수나 남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나 부처나 하느님이나 또 다른 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언제나 오직 사랑만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범사(모든 일)를 자신이나 남이 일으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하느님께서 일으키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구분치 않고 오로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 과정에서 위와 같은 가치관의 전환이 일어나 일원론적인 삶이 체질화되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부터인가는 자신의 몸을 통하여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전체이자 참 나인 신이 일으키는 체험을 위한 환상으로 보게 되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 자유 속에서 이를 관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아상(我相)이 사라져 마음이 비워진 그 사람의 몸을 통하여 하느님이 온전히 임하여 역사(役事)하시게 되니, 이러한 삶이 바로 여러분들이 말로만 듣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삶이요 보살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삶인 것입니다.
***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충격에 빠진 상태에서,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는 이 사회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전염병과 천재지변 전쟁 등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사람들로 하여금 내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러한 상황 역시 모두 섭리에 따라 일어나는 환상의 드라마일 뿐입니다. 하늘은 사람들이 인간 존재의 근본이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달아 나갈 수 있도록, 위와 같이 극단적인 드라마를 이 지구촌에 펼쳐가고 있는 것이며, 특히 우리나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밝기 직전이 가장 깜깜하고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듯이, 지금 이 지구촌은 개벽(開闢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맞이하기 위한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진통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노 전 대통령 유서의 일원론적 의미를 한 사람 한사람이 깨달아, 지금 이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드라마가 전체인 신의 체험을 위한 환상에 불과함을 알고 착각에서 벗어나 환상을 환상으로 보기 시작할 때, 머지않아 이 지구촌은 온갖 두려움의 요소들로부터 벗어나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지상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0. 내버려 두세요! Let it be! - 비틀즈 Beatles 노래
[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같이 이 노래 가사에는, “일원론적 삶을 살아가라”는 하늘의 계시가 담겨 있기에, 이를 의역(意譯)하여 여기에 싣습니다. 이 노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2위에 선정된 곡이자 비틀즈가 발표한 마지막 곡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렵고 힘든 일에 봉착해 방황하고 있을 때,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성모님께서 내게 찾아와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내버려 두렴! Let it be!
내가 정처 없이 어둠속을 헤매고 있을 때에도 And in my hour of darkness
성모님께서는 내게 찾아와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내버려 두렴! Let it be
그냥 내버려 두렴! 걱정하지 말고 섭리에 맡기렴! 너는 모든 것을 섭리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기만 하면 된단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Whisper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세상을 살아가며 환난을 당한 사람들이 좌절을 겪게 될 때에도
And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아주 현명한 방법이 있어요. There will be an answer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Let it be
설령 그들이 일시 헤어짐을 겪게 되더라도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죠.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아주 현명한 방법이 있어요. There will be an answer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let it be
내버려 두세요!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면, 섭리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저절로 수습(收拾)되어지거든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아주 현명한 방법이 있어요. There will be an answer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let it be
내버려 두세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냥 내버려 두면, 모든 일이 섭리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저절로 해결되어진답니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성모님께서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Whisper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그냥 내버려 두렴! 그냥 내버려 두렴! 모든 일은 섭리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체험을 위한 환상일 뿐, 사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섭리에 맡기렴!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성모님께서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Whisper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구름 덮인 어두운 밤에도 여전히 날 비춰주는 빛(섭리)이 있어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다음날이 밝을 때까지 나를 비춰주네요. Shine on until tomorrow
이렇게 내 안에는 항상 길을 밝혀주시며 내 몸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섭리가 함께 하시니,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요. let it be
음악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성모님께서 내게 다가와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내버려 두렴! let it be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면, 모든 일이 섭리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진답니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아주 현명한 방법이 있어요. There will be an answer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내버려 두세요. let it be
그냥 내버려 두세요! 걱정 말고 섭리에 맡기세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기만 하면 된답니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성모님께서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Whisper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그냥 내버려 두세요! 걱정 말고 섭리에 맡기세요! 지금 이 순간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기만 하면 된답니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성모님께서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Whisper words of wisdom
모든 걸 섭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let it be
0.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 로보 lobo 노래
[이 노래 가사에는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일원론적 삶을 이 땅에 구현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소명(召命)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이상 거짓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기존의 가치관을 과감히 버리고 선각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노래합니다.]
We'll be one by two today Won't you help us find a better way
Please make us feel that we are right To want to come together tonight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We've come To ask your help, my friend 'Cause you know Just how it's been
We've got a lot to ask of you And you know That's hard for us to do
Won't you help us, help us
선각자여, 우리는 그대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많은 것을 물어보곤 했지만 우리가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었음을, 그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We'll be one by two today Won't you help us find a better way
Please make us feel that we are right To want to come together tonight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Those before us tripped and fell Even though they think they're doing well
We don't want to live a lie And watch our love
Slowly dieWon't you help us, help us
지금까지 우리가 잘해오지 않았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는 무척이나 힘들었답니다.
더 이상 거짓된 인생은 살고 싶지도 않고, 우리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We'll be one by two today Won't you help us find a better way
Please make us feel that we are right To want to come together tonight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Even though We've asked your help before My mouth turned dry
Walking through your door Till now nothing meant so much to me
Through your eyes Sweet Lord I see Won't you help us, help us
전에도 여러 번 그대의 도움을 받곤 했지만, 그대를 찾아올 때마다 침이 마르곤 했었지만, 지금은 그대의 인자한 눈빛을 보면 마치 주님을 보는 것처럼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We'll be one by two today Won't you help us find a better way
Please make us feel that we are right To want to come together tonight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We'll be one by two today Won't you help us find a better way
Please make us feel that we are right To want to come together tonight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0. 부서져야 하리 - 찬송가
[거짓된 인생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천국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과감히 수용해나감과 함께, 마음속에서 분별(판단 기대 추측)을 일으키는 에고의 근거라 할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조성된 인식(認識)의 틀"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고 깨끗이 씻겨 마음이 비워져야 할 것입니다.]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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