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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826.html


가난한 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27일, 최근 일본 열도를 강타한 책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마쓰모토 하지메씨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본인의 책이 한국에 번역됐다는 것을 알고 출판사에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비를 들여 찾아왔다고 합니다.

특히나 촛불시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마침 노동절이 가까워오는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마쓰모토씨는 빈민가 출신으로 자라면서 무전여행을 감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겨울에 홋카이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다 얼어 죽을 뻔 했다는 일화는 약과입니다.

러시아에서 마피아에 쫓긴 적도 있었고, 중국 국경을 넘다 인민해방군에게 끌려가기도 했다는군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노숙자 동호회에 가입해 생존기술을 연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전일본 빈곤대학생 총연합>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나타난 그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쳐들어가 와세다 대학의 총장에게 페인트를 들이부어 구속되었는데요.

한겨울 법정에서 알로하 반팔 셔츠를 입은 채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도주의 우려도 없다(도망치면 굶어죽으니까)”는 식의 변론을 펼쳐 경직된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구치소에서 4개월 동안 복역하고 출소한 그는 또 다시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하고야 말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거리에는 흉흉하고 무시무시한 구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롯폰기를 불바다로!”

“이제 뭔가 보여줄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를 쳐부수겠다!”

구호와 함께 전파된 시위 예정일, 잔뜩 긴장한 수백 명의 경찰병력이 몰려든 장소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거리에서 불을 지피고 찌개를 끓여 나눠먹거나 꽁치를 구워 크리스마스 커플들 사이로 비린내를 풍기는 기막힌 퍼포먼스였지요(일본에는 가난한 사람은 꽁치를 굽는다는 속담이 있어서 이것으로 시위함).

어이를 상실한 경찰관이 “사회인이면 상식을 가지라!”며 질책하자 태연스레 “저 사회인 아닌데요(백수니까)”라고 당당하게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집회 신청을 해놓고 달랑 세 명이 거리를 산책하는 행동으로 출동한 경찰들을 조롱하기도 했고요. 마쓰모토씨는 그만의 방식을 통해 엄숙하고 경직된 일본 사회에 대한 저항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추어도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톡톡 튀는 이력을 가진 그는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참신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의 예로서 일본의 대표적 서민 마트인 100엔 숍에 저항하기 위해 마쓰모토씨는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재활용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100엔 숍조차 갈 돈이 없는 가난뱅이 백수들을 위해서였지요. 그곳에서 그는 화폐만이 가지는 교환가치를 거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물건을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변두리 외진 곳에서 문을 연 <아마추어의 반란>이 동네 분위기까지 활기차게 만들기 시작하더니 현재 일본에서만 12개의 지점이 생기고 따로 술집까지 운영하게 됐다는 마쓰모토씨. 그는 일종의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수많은 백수들과 의식주를 공유하기에 이르렀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됩니다. 현재 그는 일본 백수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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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백수운동이라니 조금 낯설지 않나요? 몇 달 전 어느 진보단체 홈페이지에 노숙자들과 백수들의 운동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가 시큰둥한 반응과 마주한 적이 있는 저로선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보진영들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운동만을 주구장창 외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4월 30일 건대후문 집회 현장에서 만난 진보진영의 활동가 대부분은 백수들의 조직체나 운동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마쓰모토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실업자가 늘어가는 한국에서 노동자 이외의 빈곤층과 백수운동이 가진 가능성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일단 이번 지면에서는 28일 전국 백수연대 대표인 주덕한씨와 기자들이 던진 질문들의 답변, 그리고 29일 한국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들려준 그의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과연 한/일 양국의 저항 운동에서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땅의 백수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면?

한국의 촛불집회를 보고 감명을 받은 이유

마쓰모토: 일본도 실업이나 프리터족이 되어 연명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오른쪽 사진-일본의 가게 홍보 피켓 알바). 하지만 현장에서 노동문제를 제기하더라고 곧 원상 복구되고 말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재활용 가게를 열기 시작했을 처음에는 주변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지요.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밑바닥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해졌고 (정부가) 대책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주덕한: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구조화 됐어요. 작년 경제위기 이후부터 죽고 싶을 정도의 고민을 토로하는 백수들도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그런 분들과 어렵사리 만나서 상담을 해보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많아서 놀라게 됩니다. 어쩔 땐 새벽 세시에도 전화가 와요. 그만큼 절박한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말이죠. 이제는 잘 때도 전화를 꺼놓지 못합니다.

마쓰모토: 노동운동이나 노조 등을 통해서 의식적인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도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주위의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사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유롭게 산다는 것 자체가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가게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의 경우 상당수가 직업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일 때문에 괴롭고 힘들어서 오는 것이죠. 제가 알려주는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때려 쳐라. 실제로 제가 직접 사표를 써준 경우도 많아요.

마쓰모토씨의 말에 모두 다 웃어버렸습니다. 기자들 중 누군가 그러면 사표를 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죠. 혹시 후회하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인도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네요. 당사자는 그런대로 잘 해결돼서 만족하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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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저도 대학 초기에 운동을 시작할 때는 진지했어요. 반전운동도 하고요. 그런데 진지하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재미가 없으니까 사람도 안 모이고요. 그런데 놀이 기분으로 하면 재미도 있고 주목도 끈다는 것을 알았죠.

자유롭게 하니까 연락을 주는 사람도 생겼어요. 지금은 거대한 명분이나 정의감 따위를 가지고 진지하게 하지는 않아요.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지요. 그런데 오히려 일상의 문제들이야 말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재미있는 시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작년 촛불집회가 떠올랐습니다. 먹을거리와 민영화 등 일상과 밀접한 고민을 가지고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이 저마다 기발한 구호를 선보이며 축제와 시위를 결합시킨 재기발랄함 말이죠. 마쓰모토씨도 한국의 촛불 집회를 보면서 놀랐다고 합니다. 단체나 조직이 아닌 일반 시민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서 축제처럼 시위를 벌이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요. 일본에서는 의식적으로 시위에 나와 구호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마쓰모토: 재활용 가게나 술집을 운영하면서 좋은 점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에요. 손님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술도 한잔 하고, 다음에 만나면 같이 데모하러 가기도 하고. 게다가 우리끼리 운영하는 가게에서 재화가 돌고 돌아요. 가게에서 먹고, 옷도 해결하고. 돈이 없는 분들도 다른 식으로 보탬을 줄 수 있으니 가게에 찾아와 공짜로 필요한 부분들을 충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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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마쓰모토씨의 가게에 가끔씩 우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항의를 한다고 합니다. 일본은 강해져야 하고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훈계한다고요.

누군가 자신의 등 뒤에서 미친놈이라고 말하면 그냥 무시하지만, 일부러 찾아와 면전에서 그런 식의 비난을 하면 어쨌거나 친구가 된다는 마쓰모토씨. 그럴 땐 골치 아픈 사상 이야기는 접어두자고 한 채 근처 주점으로 데려가 같이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상대가 계속해서 그런 주제를 떠들어도 어쨌거나 마시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요. 그리고 친구가 되어 다음엔 같이 시위에 나가기도 한다더군요. 좌파니 우파니 서로를 구분하고 적대시하려는 사람들도 사실은 공통점을 가지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사상이 먼저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라는 것이죠.

저의 경우에도 작년 겨울 촛불 집회 후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과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물론 서로의 입장은 달랐지만 그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엔 술자리가 끝나고 선물까지 받았죠.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은 나쁜 놈들의 작전

주덕한: 일본에서 더치페이 문화를 보고 당혹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혹시 가난하게 살다보면 주위에 폐를 끼치는 적이 없었나요?

마쓰모토: 그런 건 자주 있죠. 무슨 일을 하다보면 폐를 끼친다는 것은 당연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거리에서 음악을 틀면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끄럽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일본 사회를 보면 문제 자체를 무시하려고 해요. 하지만 그런식으로 불편함을 끼치면서 서로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것이 중요 합니다(그래야 문제가 드러나고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니까). 그리고 저는 성격상 더치페이 같은 거 싫어해요. 저마다 수입이 다르니까요. 누구는 돈이 많을 수도 있지만 누구는 돈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데 똑같이 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가게를 12개나 운영하고 술집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도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나 이 사람 자기 책 홍보하려는 사기꾼 아니야?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김현준: 극 빈곤층의 경우엔 그런식으로 가게를 내고 하기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가난하더라도 세대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고요. 그렇다면 마쓰모토씨 같은 방식의 저항이 대중적인 운동방식으로 발전해서 크게 번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쓰모토: 모든 사람이 하나의 방식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경우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제가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큰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에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가는 수많은 길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마쓰모토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나니 아차 싶더군요. 그가 빈민가 출신임은 앞서 밝혔습니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시스템이 너무도 재미없어 보여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유롭게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갔다고 하네요. 바로 알바비 모아서 자기 가게를 오픈한 것입니다. 그것도 변두리 버려진 곳에다가. 실제로 가게를 통한 수입도 최저 생활비만 생기는 본전 유지 수준이라는 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재미를 찾기 위해 맥주 파는 이벤트 자체를 놀이로 만들어 즐긴답니다. 맥주를 판돈으로 놀이 비용까지 충당하니까 본전이지만 즐겁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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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왜 이 사람을 오해하고 비판하려 했을까? 게다가 대중적인 운동방식이란 것이 뭔가. 모든 사람이 소설가가 되어 사는 것이 웃긴 것처럼 획일성을 내포한 것은 전체주의가 아닐까. 어쩌면 공감하는 정신이나 반격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마쓰모토씨가 생각하는 가난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찌 보면 세상의 90퍼센트가 가난뱅이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꽤 수입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가난뱅이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죠.

“살아남기 위한 능력을 올리기 위해 많이 지출해야 하고 이것 때문에 다시 수입을 더 올려야 하는, 그런 생활 리듬을 가진 사람은 가난뱅이다. 돈이 있다 없다가 기준이라면 아프리카 난민이 가난뱅이겠지만 그들보다 자본주의 세계에 가난뱅이가 더 많다.” <한겨레 21-세상의 90%는 가난뱅이 [2009.04.24 제757호]>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각자의 경우와 사정이 달라도 빈곤의 시스템 안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랍니다. 분명히 같은 가난뱅이 인데도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시위하는 것을 두고 “니가 아직 배불러서 그래”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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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너 전쟁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이나 도와라.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하죠. 그런데 약자끼리 서로를 비교하며 누가 제일 가난한가, 누가 제일 힘든가를 따지게 만드는 것이 나쁜 놈들의 작전입니다. 연대하지 못하도록 이간질하고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죠. 실상은 우리 모두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백수운동이 무엇인지 몰랐고 일종의 히피 이야기로 알았습니다만 그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그가 출국하기 전날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로 건넸습니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 가난뱅이들과의 연대를 꿈꾸는 마쓰모토씨. 지구 어디에서 어떠한 몰골로 살아가던 간에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픈 맘이 생겼습니다.

공간을 제공해 주신 홍대 만화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성산 마을 극장 <시민 공간 나루>, 김경원님 등 통역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비 천원을 꿔주신 <닭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만국의 가난뱅이들이여 단결하라! ^-^// 

<가난뱅이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밤 늦은 11시.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재활용가게 ‘아마추어 반란’ 5호점(도쿄 스기나미구 고엔지)가 한산해지는 시간이다. 가게 주인장 마쓰모토 하지메(34)가 한숨을 돌린다. 4월은 이사철이라 중고물품을 수거하느라 정신이 없다. 찾아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마쓰모토는 중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건넸다.

마쓰모토는 ‘가난뱅이의 별’ ‘스트리트 게릴라’다. 최근 <가난뱅이의 역습>(이루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그의 ‘투쟁기’는 필살기가 ‘웃겨죽이기’인 듯 유쾌하다. 대학 시절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결행한 식당 밥값 20엔 인상 반대 데모가 그의 ‘찬란한 투쟁’의 서막이었다. 모임의 회원 수는 몇 명 안 되었으나, 물량작전은 먹혔다. ‘학생식당 결딴 내기 10만명 집회 결행’이라 적힌 전단을 학내에 붙이고 매일 “학생식당 너무 맛없다”고 확성기를 틀어댔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가운데 다가온 디데이, 학생들은 식판을 내던지고 그릇을 깨고 조리실로 난입해 들어갔다. 결과는 해피엔딩. 식당은 10엔 특별할인을 단행했다. 대학 때도, 졸업하고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조직하고 나서도 그의 투쟁은 이런 식이다. 추울 때는 난로를 피우고 꽁치를 굽거나(‘가난한 사람은 꽁치를 굽는다’라는 일본 속담에서 나온 것) 찌개를 끓여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무시무시한 전단지를 뿌리고는 역 앞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이다(‘한가해도 유분수지’). 무슨 일이냐는 사람들한테는 “기무라 다쿠야(일본 최고 인기 배우)가 온대요”라고 말한다.

-당신이 말하는 ‘가난뱅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마음자세인가, 실질적 조건인가. 선택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인가. 가난뱅이에게 가난은 필수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당신 정말 가난뱅이인가.

=글쎄, 일단 난 돈을 쓰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뱅이다. 어린시절에 상당히 가난했다. 슬럼가에서 자랐고, 아버지도 갑자기 일이 없어지거나 하고, 집에 돈도 없었다. 그러나 가난뱅이란 지금 가난하고 어린시절에 가난했고 하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꽤 수입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가난뱅이일 수 있다. 사랑남기 위해 능력을 키우려고 많이 써야 하고 이를 위해 다시 수입을 더 올려야 하는, 그런 생활 리듬을 가진 사람은 가난뱅이다. 어찌 보면 세상의 90퍼센트가 가난뱅이일지도 모른다. 돈이 있다 없다가 기준이라면 아프리카 난민이 가난뱅이겠지만 그들보다 자본주의 세계에 가난뱅이가 더 많다.

-당신의 가난한 생활을 소개해달라.

=생활비는 한 10만엔, 여기서 집세 3만엔, 전기 광열 휴대전화 등에 2만엔, 나머지 5만엔 중에 4만엔은 술값, 나머지 식대, 특히 식비는 여기서 대충 재료 사서 친구들과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별로 안 든다. 취미는 여기 내 재활용가게에서 다 한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뭔가.

=자본주의에 얽매이거나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맘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위해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작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승리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 맘대로 해서 “봐라, 어떤 게 좋은 거냐” 하고 보여주면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다. 지금 참으면 언젠가 좋은 세상 온다는 것보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역습’이다.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게 ‘역습’이다.

-데모가 신선하다. 즐겁지 않으면 데모가 아니다, 라는 것 같다.

=‘얼마나 즐길 수 있나 보자’하고 데모를 한다. 우리는 국가 행정에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다. 자기 사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데모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할 필요 없다. 안 하고 말지.

-처음부터 그랬나, 아니면 바뀐 건가.

=대학에서 데모를 한다기에 재미있어 보여 갔는데 별로 재미없었다. 하는 말은 맞는데…. 나같이 생각하는 애들이 꽤 있었다. “맞긴 한데 난 안 갈래”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의 말과 문자가 자신들의 ‘센스’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말, 문장, 그런 것이야말로 듣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마쓰모토는 “즐겁게 데모해보기 위해서” 구의원 선거에도 나갔다. ‘합법적으로’ 역 앞 길을 막고 확성기 빵빵 쓰는 데모를 하고 싶어서다. 비록 떨어졌지만 1061표를 득표했고 승리의 파티도 했다. ‘공탁금 탈환투쟁 승리’(400표 이상이면 ‘탈환’ 가능). 그는 자신이 조직한 데모 중 구의원선거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기보다는 괴롭히는 선거운동 방식을 ‘축제’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한 선거도 역시 예전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민폐’는 아니었나.

=역 앞에서 매일 파티했다. 거리가 해방공간이 되었다.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리고 혁명 후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거리를 걷는 이들을 보면 자신을 검열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거리에선 이런 일 하면 잡히지, 민폐지, 그럼 안 되지 하는 검열하고 있다. 근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닌가? 선입견으로 처음부터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거 뭐야?”라며 놀랄 만한 게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이 바뀌어나갈 거라 믿는다. 하나를 놓고 좋다는 이, 아니다라는 이, 언제나 있다. 그러면 싸우라. 뭐가 좋은지 보여주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게 ‘자치’다. 대립을 없애고 그냥 참는 것, 그것이 더 나쁘다. 민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폐 기준이 뭔가. 다른 선거 후보들이 종일 더 큰 소리로 자기 이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음악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쁘다면 그것도 선입견이다. “이런 것은 하면 안된다”고 하는 걸 계속해서 없애가야 한다.

-왜 하필 구선거였나?

=제일 싸니까. 30만엔 내면 입후보할 수 있고, 400표 이상이면 돈은 다시 돌아온다. 차를 쓰는 것도 다 합법인데 트럭 쓴다 음악 튼다 하니까 경찰이 무지 방해를 했지만 우리가 누군가.

-한국의 촛불집회를 알고 있나. 한국에서도 꽤나 귀엽게 운동을 했다. 데모의 달인 마쓰모토가 보기에 어땠는지?

=TV를 통해 봤다. 분위기 고조되는 방식이 일본과 많이 달라 보였다. 일본은 의무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돼서 가거나 불려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생기가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 대단했다.

*마쓰모토는 “100엔숍에 대항할 것은 공짜숍밖에는 없어”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야마시타 히카루와 함께 ‘아마추어 반란’이라는 재활용가게를 만들었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레프트라이트’다. 상표권이 없다. 수출도 잘 된다. 가끔 독일에서 멕시코에서 전화를 걸어서는 한번 해보겠다고 말을 한다. 마쓰모토는 4월27일 ‘노동절’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누가 불러준 것도 아니지만…”

-왜 재활용가게인가?

=재활용가게가 무지 하고 싶었다. 편의점처럼 그냥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중고품 수거하러 가서 고쳐주기도 하면서 아줌마하고 친해지기도 하고,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혁신적인 저항이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새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대량소비한다. 그것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이다. 낭비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세상에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대항하는 거다. 그리고 주변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나?

-한국의 실업률이 대단하다.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라는 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이 가난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 없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고시생, 취업준비생으로 만든다. 세상도 그들을 실업자라 하지 않고 ‘산업예비군’이라 부른다.

=일본과 완전 붕어빵이다. 산업예비군, 그거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좋다. 물론 일이 자신에게 맞고, 일을 너무 좋은 거라면 다르다. 그게 아닌데도, 무리하게 취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문제다.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인정해야 한다. 대학을 나와 모두 취직해, 월급 타, 내집 마련해, 결혼해 이런 것 안 하면 비정상이라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모두 소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 우습지 않은가?

참 돈 이야기에서 할 말 있다. 돈 없어도 부모 봉양 가능하다. 오히려 돈 있으면 ‘로진홈’(실버타운) 같은 데 보낸다. 마음의 문제다. 취직 잘하고 월급 많이 받아서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 다 거짓말이다. 일류인간 안 되면 안 된다는 거, 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다.

-한국의 가난뱅이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한국의 가난뱅이들은 어떤 사람인가?(웃음) 하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다. 우선 남이 하는 말 듣지 말라. 상식, 규율, 규칙, 다 거짓말이다. 자기가 정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이바쇼(거처)’를 만들라는 것이다. 나의 거처는 재활용가게다. 혼자 살면 돈이 더 든다. 동료가 있는 게 좋다. 거처를 만들고 동료와 친구들이 생기면 삶은 더욱 풍부해진다. 거처가 마음 풀 수 있는 작은 술집이든, 폐가를 인수해서 뭔가 해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거처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가난뱅이들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국경을 넘어 이어지기 쉽다. 우리의 ‘아마추어의 반란’이 한국의 ‘아마추어 반란’과 이어지면 국가 이상으로 신뢰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면, 남 이야기 듣지 말고, 있을 곳을 만들라.

-한국에서 뭘 할 계획인가.

=초대받은 건 아니지만, 책도 출판되었으니 어떤 사람들이 사고 보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참,요즘 촛불시위 하나? 하면 가보고 싶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 가난뱅이들의 데모, 선거 때 했던 식으로 역 앞에서 꼭 한번 해보고도 싶은데….(웃음)

도쿄(일본)=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