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 인생공부
에너지 매트릭스
방콕 - 특별히 할 일이 없음
오준영님은 사회적으로는 간판에 합당한 실력이 있는 듯이 보이는 특별한 영혼이다.
그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덕택에 풍습(?)에 따라 부모와 떨어져 어릴 적 외가에서 자랐다. 엄한 외할아버지로 인한 집안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집안의 독재가이신 외할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었다. 집안 어른의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해야 하는 환경 속에 자란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가에 들어와 생활하면서는 대학 중퇴의 학력인 어머님의 한과 염원, 성원과 감시 덕택에 S대에 들어갔다. 실제 전공에 대한 실력이 부족한 점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으나 아빠의 단식을 통한 만류에 어쩔 수 없이 학업을 계속하였다. 대학을 졸업 후 우연한 외부의 도움으로 동 대학원의 석사 과정을 우여곡절을 거치며 학위를 받았다.(오히려 담당 교수가 논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답니다.)
지금까지 오준영님의 삶의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보다 가족들의 일방적 후원이나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다보니, 자연적 결과보다 사회적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의식이 굳어졌다. 특히 엄마의 공부에 대한 한(恨)이 당신이 직접 늦게라도 학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풀기보다, 아들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투사를 통하여 해소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게 결국 자녀로 하여금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능력의 부재라는 자의식이 부족한 상태를 만들었다.
졸업 후에 전공을 살려 모 화학회사의 책임연구원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기술 도입한 새로운 첨단 제품을 만드는 라인을 완성하여 시제품을 생산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동료들 대부분은 준영님의 학벌을 보아선 당연히 잘해낼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장비 설치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정직’ 인생 공부를 수행하는 여타의 분들처럼 준영님은 근면하고, 정직한 듯 보이는 행실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그는 어릴 적 외가에서 훈련된 대로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것을 종종 말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였고, 또 얼마간은 그 방식이 통했다. 게다가 일단 정해지면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근면함은 소소한 위선의 약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엘리트로서 인정받고 집단의 대표로 뽑히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몇 번의 시제품 생산의 실패를 겪으면서, 한 번도 경영진이나 동료로부터 준영님은 실력을 의심 받지 않았다. 모두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기만 했다. 결국 회사는 몇 번의 시도 후 엄청난 손실을 보고 그 사업부를 접었다. 준영님도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에 준영님은 아버님이 국내의 봉제 공장을 동남아로 옮기면서 현지 공장의 관리를 맡았다. 이러다가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탈출을 모색했다. 결국 결혼을 기회로 입국하면서 출국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생겼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 그는 다시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때 입사 제안을 한 회사는 전공과 거리가 먼 생명공학 쪽의 벤처기업이었다. 실제로 전공에는 자신이 없던 그로선 최고의 기회였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갈 회사의 사장은 준영님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위선자였다. 그 회사의 기존의 전공 연구원들이 사장의 실력이 엉터리임을 지적했기에, 사장도 벤처 자금을 유용하려는 자신의 거짓 기술력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사장 또한 전공 실력보다는 단지 간판을 내세우는 사원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연구원들이 해고되면서 그는 입사했다. 그는 사장이 지시하는 실험은 매우 충실히 했지만, 애초부터 예상된 것처럼 기대하는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오히려 투자금과 국가의 벤처 보조금을 축내고 있었다. 이렇게 몇 년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반영하는 사장과 자신의 내면에 양심의 가책을 갖게 된 준영님은 남들이 모르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직하지 못한 근원적인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 곳을 탈출할 방법을 고민했다. ![]()
이런 저런 명상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정신 이상이라는 기발한(?) 방식을 동원하여, 내심을 들키지 않고 그 위선의 현장으로부터 탈출을 했다. 이런 게 ‘정직’ 인생 공부를 수행하는 분들이 자신에게 실력이 없다는 것을 내심으로는 인정하지만, 실력 부족이 탄로 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정당화 할 다른 사건들을 일으키는 전형이다. (관계를 끝날 때에는 핑계꺼리를 창조한다)
이처럼 실력 없는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 그 단체는 결국 망하는 귀결이 있을 뿐이다. 이유는 실력 없는 사람이 중요한 요직을 꿰차고 있으면서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의 진입을 사실상 막기 때문이다. 특히 ‘정직’ 인생 공부를 하는 분이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있을 경우에는 더욱 효과는 광범위하다.
이후 그는 이런 저런 핑계를 창조하여 주로 집안 살림을 해왔다. 가끔 게임에 몰두하기는 했지만 집안 식구들조차 그의 사회적응에 어려운 불가피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결국 세상의 피해자로 인식되고 있고, 또한 동정을 받으면서 존재하고 있다.
실제 어떤 관점에서 그는 피해자일 수도 있기는 하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고, 어릴 적 외가의 환경, 또 엄마의 한, 주변의 과도한 기대 등이 준영님의 의지와 무관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인생 공부의 관점에서는 실제로 그가 이 모든 상황을 계약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부정직을 보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기로 스스로 계약을 했다.
그래서 준영님은 정직한 존재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정직한 존재가 되는 기회를 갖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자유 선택을 할 수 있다.
오준영님은 사회적 페르소나보다 내면으로 향하고,
결말이 어떻게 나던지 자신의 모든 행위를 쉽게 합리화지 않고
자신이 상황을 창조한 것으로 책임질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거짓말 혹은 이론적 설명을 믿는 대신
자신의 견해가 엉터리일 수 있음을 자각하고 知言行信을 일치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렇게 선택하고 결단 또한 가능하다.
즉 인생 공부를 마스터를 시작할 수 있다.
‘정직’ 인생 공부를 수행하는 분들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생각해내려고 계속 애쓰고,
자아가 여러 갈래이기에 상충되는 의견 모두를 옳다고 믿는다.
궁하면 말로 표현하지 않은 속마음의 진심을 내세우고, 잘못된 것은 자기 본심은 아니라고 여긴다.
주위에서 이점을 지적하면 오히려 지적하는 이의 약점을 노리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지적하는 사람들의 1%의 약점을 찾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애쓴다.
그래서 상대의 99%의 장점을 무효화하려하지만, 결국 자신의 장점인 근면성도 99%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단기적인 만남을 선호하여 깊은 관계를 가지는 걸 꺼려한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관계한 사람과는 부정적 상황으로 마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을지라도
잠재적으로 있기에 마음속에서 계속 궁리한다.
그래도 그들은 실행의 대가이다. 주어진 과제를 매우 잘해낸다.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들의 이목을 받는다.
진실로 성실(誠實)한 것 빼고...
"정직 인생 공부"에서 허우적거리는 제가 이 글에 댓글 단다는 게 낯뜨거운 일입니다만, 여하튼 제가 아는 제 자신의 일부를 공개해 보도록 하지요.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
제가 인식한 "정직 인생 공부"의 특징은 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잘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불일치함은 외부의 불일치된 존재를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해합니다. 그런 존재를 좋게 보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합니다. 물론 그림자나 거울 작용으로 인해 제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경우가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이겠으나 "정직 인생 공부"의 가장 주요한 패턴인 믿음-생각-말-행동의 불일치는 서로를 자극하게 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됩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서도 그리 어긋나는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은 "정직 인생 공부"의 최하위 단계로 볼 수 있는 회색인간의 출현을 야기합니다. 내면으로 향하는 인생 공부의 마스터(자각과 재구성 그리고 존재되기)는 커녕 외부로 표출되는 두 가지 주요 패턴이 있는데요. 참고로 이 부분에 대해서 홍세화님이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지요. 참고글 - 회색인들의 사회 | http://blog.hani.co.kr/hongsh/421
요컨 데, 첫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아주 맹렬히 강하게 비판하고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투사일 수 있다는 고려는 전혀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정직하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으니, 이 수준에서는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정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정직하다고 비난합니다. 결백증이라고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 어찌 사느냐고, 당사자에게 직접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에서는 그렇게 여깁니다. 저렇게 피곤하게 살아서 뭐 어쩌라고, 정직과 고결한 일치성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무언가 흠을 잡아내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지금에서야 알게된 사실입니다만 정직과 삶의 일치성을 보이는 존재들이 정직 인생 공부를 활성화 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신의 인생 공부를 마스터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영혼의 움직임으로 정직 인생 공부를 수행하는 당사들의 감정적 충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위의 실례에 언급된 오준영님도 이런 패턴을 보였습니다. 저 또한 동일한 패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곧 홍세화님이 언급한 회색인이 되는 것입니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 이 회색은 흰색 옆에 가면 검어 보입니다. 그래서 흰색을 배척합니다. 검은색 옆에 가면 회색은 조금 하얗게 보입니다. 자신을 돗보이게 하기 위해 검정을 마구 공격합니다. 회색은 나는 결코 검지 않다고... 여기에서 온갖 음모가 감행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회색 인간들의 암약. 홍세화님 지적은 사회 전반에 이런 분들이 많이지고 있고,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가 위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회색이라는 것이 어디로 가자는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머물러 내 잇속을 차릴 수 있게 또는 손해보지 않게 적절히 안배하자는 내심이니 진보나 발전의 방향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회의적이지요. 영혼의 입장이나 영성 차원에서도 사회 전반에 있어서도 머문다는 것이 퇴보나 다름없지요.
근본적으로 인생 공부의 마스터라는 것이 내면을 향하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합니다. 외부의 상황을 통해 나 자신을 규정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회색성의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색인이 지니는 이러한 에너지 패턴이 에너지 스탬프일 때와 에너지 매트릭스일 때의 차이는 명확한 것으로 여깁니다.
스탬프의 경우 회색성에서의 결단은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양단의 결단으로 새로운 각본을 쓸 수 있겠습니다만, 매트릭스의 경우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자각이 없이는, 근본적으로 대회 활동과 관계의 측면 그리고 사회 주요 요직의 책임을 맡는 일은 없어야할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자기의 삶의 패턴을 자각하고 그것을 마스터하는 것이고, 이것은 그 어떤 사회적 요직을 맡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불안정성은 다수 대중의 불일치성을 자극하여 인기를 끌어 모으게 됩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기회는 계속 주어집니다. 집단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다만 정직 인생 공부를 수행 중인 주변인들의 자각만이 있을 뿐으로 여깁니다.
자기와의 조화, 자기 일치성으로의 첫걸음을 시작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