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세계 정상의 정치가들이 연단과 성서대聖書臺와 설교단에서 내뱉는 단 하나의 문장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우리 것은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더 나은 방법인 건 아니다.

이 겸손한 말 한마디가 종교 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정당 간의 간격을 메우고, 국가 간의 갈등을 억제할 수 있다.

나마스테Namaste....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을 공경합니다.
이 말 한마디가 그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으로 얼마나 경이로운가.





우월의 환상...나마스테Namaste


인간은 자신들이 자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을 굴복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낙원이 되기 위해 창조되었던, 바로 그 보금자리를 파괴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를 굴복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들을 감싸 주고 자신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창조된, 바로 그 가족을 파괴한다.

우리가 모두가 하나일 때, 「우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그 자신보다 우월할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 모두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 존재한다는 환상속에 있으니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충분히 있지 않다. 음식도 충분치 않고, 돈도 충분치 않으며, 사랑도 충분치 않고, 신도 충분치 않다.

충분하지 않으니 너희는 그것들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경쟁해야 한다면, 누가 이길지 알아낼 방도가 있어야 한다.

「우월」이 너희의 대답이었다.

우월한 자가 이긴다. 그리고 「우월」은 특정 조건에 근거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고의로 그 조건에 다른 조건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승자임을 미리 선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너희 중 일부 사상가들은 이렇게 반문했다(물론 반문한 사람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백인이 「우월」하다고 선포되었고,
그런 다음에는 미국인이,
그리고 물론 기독교도가 우월하다고 선포되었다.
아니면 러시아인이나 유태인, 혹은 여성이었던가?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했냐고? 물론 가능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누가 체제를 만들고 있는가에 달린 문제였으니까.

가장 초기의 우월한 존재는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들도 그 점에 실제로 동의했다. 뭐니뭐니 해도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여자가 아닌가? 그리고 생명이야말로 모두가 가장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너희의 모계사회 시대에는 여자들이 더 우월하다고 여겨졌다.
마찬가지로, 백인은 최초의 인종이 아니었고, 따라서 우월하지도 않았다.
사실 지금도 백인은 우월하지 않다.
남성도,
유태인도,
기독교도도 우월하지 않다.
회교도나 불교도나 힌두교도 나아가 민주당이나 공화당, 보수주의자나 공산주의자, 그 어떤 것도 전혀 우월하지 않다.
너희를 자유롭게 할 진실,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에 너희가 말할 수 없었던 진실은,

「우월」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희가 꾸며낸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선호와 꿈과, 이해(사실 무척이나 편협한)에 기초해서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의해 왔다. 너희의 관점과 너희의 목적과 너희의 의도에 기초해서 너희가 더 낫다고 단정한 것을 선언해 왔다.

그런데도 너희 중 일부는 이것이 나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선민」이나 「유일한 참된 신앙」, 구원받을 유일한 길「이라고 이름 붙인 건 신이라고.


하지만 너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모든 것을 무효화할 수 있다. 환상을 있는 그대로, 즉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현실로 보고, 환상이 마치 진짜인 양 그것에 의해 사는 것을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

특히 확고한 믿음으로「우월」의 환상에 의해 사는 것을 그만둬라, 오히려 그 환상을 이용해서 「우월」은 실재하지 않음을 알아차려라. 우리가 모두가 하나일 때, 「우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그 자신보다 우월할 수 없다.

명심하라, 신이 하는 모든 이야기에 대해 그러하듯, 너희가 읽는 것을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전혀 오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진 마라.

자신의 최고 출처는 본인 자신이다. 그러니 탈무드를 읽든, 성서를 읽든, 바가바드 기타를 읽든, 코란을 읽든, 팔리 경전을 읽든, 몰몬교의 성경을 읽든, 외부에서 권위의 출처를 구하지 마라.

차라리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발견한 진실이 자기 가슴속에서 찾아낸 진실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이 일치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이 진리」라고 말하지 말고, 「내게는 이 책이 진리」라고 말해라.

너희 내면에서 찾아낸 진실 때문에 남들이 너희 사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면 반드시, 「내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더 나은 방법인 건 아니다.」라고 말하라.

나와 너희의 대화도 그러하다. 이 대화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이것이 너희로 하여금 세상을 더 명확히 보게 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이것이 너희 나름의 내면 진리에 더 가까워지게 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그러나 이것을 너희의 새 「성경」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것은 너희의 신앙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앙을 구하지 말고, 자신의 앎을 자각하길 구하라. 자신을 그런 자각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이용하라. 자신이 환상에 따라 살고 있고, 그 모두가 진짜가 아님을 이해하라. 그럼에도 「환상」은 무엇이 진짜인지 가르쳐 주고 너희가 그것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모든 것이 「하나」이고, 그 위에 다른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는 아름다운 표어 이상이다. 그것은 「궁극적 실재」의 본성을 정확히 설명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할 때, 너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체험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의 관계를 다르게 보게 된다. 훨씬 높은 차원에서 연결관계를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너희의 자각은 커지고 통찰력은 무척 예리해진다. 너희는 말 그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이렇게 삶을 깊이 꿰뚫는 능력이 커지면, 환상을 지나쳐서 너희의 실체를 인식할recognize 수 있게 된다. 「다시 알게」, 재인식하게re-cognize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 있다.

알지 못함에서 다시 앎으로 가는 이 여행은 느리게 이루어질 수도 있고 짧은 걸음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 언제나 다음을 잊지 마라. 그런 작은 걸음 하나가 우월의 환상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우월」의 관념은 지금까지 인류를 찾아온 모든 관념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그것은 한순간에 가슴을 돌로, 따스함을 냉혹함으로, 「돼」를 「안 돼」로 바꿀 수 있다.


국회와 세계 정상의 정치가들이 연단과 성서대聖書臺와 설교단에서 내뱉는 단 하나의 문장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우리 것은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더 나은 방법인 건 아니다.

이 겸손한 말 한마디가 종교 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정당 간의 간격을 메우고, 국가 간의 갈등을 억제할 수 있다.

나마스테Namaste....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을 공경합니다.
이 말 한마디가 그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으로 얼마나 경이로운가.

-- 신과 나눈 교감..우월의 환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