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글 수 39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4)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上)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ㆍ실질적 민주주의 역진, 희망의 공동체와 멀어져
김상봉 선생님, 베트남 학술회의는 잘 끝내셨나요. 저는 베트남을 갈 때면 한국과의 묘한 동질성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둘은 누천년 중화체제 하에서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유지한 유이(唯二)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근대의 동아시아와 서구 제국들의 피침 경험도, 20세기 세계냉전으로 영토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을 치른 점도 같습니다. 베트남전쟁에의 한국의 참전과, 현재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해외직접투자 1위국가라는 점도 특이하지요.
건국 60년의 대한민국을 저는 나름의 세 가지 사유범주를 정해 역사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려 합니다. 첫째 국가의제의 설정과 성취 여부, 둘째 분석수준으로서 국제·남북·국내 차원, 셋째 역할범주로서 국가·시장·시민사회 사이의 관계입니다.
먼저 그동안 한국사회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주의, 복지사회·인간사회의 네 가지 국가의제(national agenda), 즉 공통의 사회의제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이 의제들에 조응하는 국가공동체는 각각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사회국가가 되겠지요. 냉전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국가건설은 좌우대결과 전쟁상태 속에 생사투쟁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경제발전은 한 세대 만에 빈곤탈출과 산업화를 이루는 기적을 보여주었구요. 민주화 역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체제를 모두 시민저항을 통해 붕괴시키거나 붕괴의 단초를 마련할 만큼 놀라웠습니다.
산업화 · 민주화 등 성취 불구
개인의 행복·자유·인권 악화
국제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국가의제 성취는 세계적 성공사례였습니다. 동시에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 최전방에 위치한 이유로 이 세 의제를 달성하는데 국제사회의 기여와 후원은 안보국가 의제에서의 한국전쟁 참전, 발전국가 때의 막대한 원조, 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와 압력에서 보듯 상당히 컸습니다. 한국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첨단제품,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효과 역시 동아시아와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의 세계화 이전에 이미 건국 이래 한국은 늘 ‘들어오는 세계화’와 ‘나아가는 세계화’가 만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발전해왔습니다. 남북관계 차원에선, 분단으로 인해 인권·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는 일방 적대와 경쟁을 통하여 국가의제를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분단문제는 훗날 상세히 말씀 나눌 것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우리의 성취는 공짜가 아니라 막대한 인간적 비용을 지불한 결과였습니다. 전체 국가의제 성취를 위해 개인행복은 물론, 자유와 인권, 심지어 생명을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며 의제들을 성취한 지금 우리는 그 꿈과 희망과 희생에 값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나요?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중 시장화·기업화·양극화로 달려감으로써 형평화·복지화·사회화를 통한 공화화와 인간화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를 이루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회적 삶이 보다 안정되고 행복하며 평안하고 인간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진하고 있습니다.
건국 이후 우리는 국가주도 산업화를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이어 국가와 시장이 시민사회를 성장시키고, 다시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국가를 전복하며 민주주의를 달성해온 발전동학을 보여왔습니다. 위로부터 근대화의 전형적인 순환경로였지요. 문제는 민주화를 이룬 지금 우리사회가 압도적인 시장우위로 치달아 민주공화국가, 민주공화주의의 필수요소인 이 3자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화가 시장과 사회 기득세력의 자유화로 연결되면서 시민국가·민주국가·공화국가가 아니라 기업국가·시장국가·경제국가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독립적인 자기역할을 갖고 있어야할 안보(제2롯데월드 허용)와 교육(교과서 개정)과 언론(미디어법 개정) 영역마저 일관되게 경제·기업·시장관점에서 접근하는, 탈공화 반민주 탈공공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장유일주의의 귀결이 어떠할지 두렵습니다.
자살률 높고 출산율 세계 최악
한국사회 피폐성·불안정 증거
결국 우리는 60년 동안 민주화 이전 국가우위의 권위주의국가와, 민주화 이후 시장우위의 시장국가·기업국가는 건설하였지만 소망스런 민주공화국가는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또 안보·경제·노동·정치·주거·교육 문제는 부분적으로 해결해 왔지만 이들이 모두 응축된 한 개인의 인간적 사회적 실존에 관한 문제, 곧 인간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거나 더욱 악화시켜온 점이 없지 않습니다. 사회문제가 곧 실존문제요 실존문제가 곧 사회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즉 사회를 떠난 실존도 실존을 떠난 사회도 불가능합니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 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 역시 막중한 것이지요.
민주화 이후 구체적 통계지표를 보면 한국민주주의는 글로벌 보편으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정부의 성장정책과 사회권력자원 집중으로 인해 시장화·기업화·양극화는 빠르게 진행된 반면 형평화·복지화·인간화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양적 지표를 비교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정부들 못지않게 유능하였음에 놀랍니다. 박정희 시대 1961-70년의 평균 GDP 성장률은 8.45%, 71년-79년은 8.27%였습니다. 전두환 시기는 8.7%(80년 제외), 노태우 시기 8.36%, 김영삼 시기 7.1%, 김대중 시기 7.2%(98년 제외)로 계속 고성장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4.3%로서 1인당 국민소득은 12,826불에서 20,081불로, 수출은 1,938억불에서 3,567억불로 급상승하였습니다. DJ-노무현 시기의 경제성장은 같은 수준의 세계국가들 중 최상위급이었습니다. 이 여섯 정부 마지막해의 외환보유고를 보면 각 57억불(1979), 92억불(1987), 171억불(1992), 204억불(1997), 1214억불(2002), 2622억불(2007)이었습니다. 역시 김대중·노무현에서 급증합니다. 무역총액 및 수출 증가율, 물가상승률도 권위주의정부에 결코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내면은 완전히 보편경로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한국민주주의의 사회성, 평등성, 복지성의 완전 일탈입니다. 1인당 GDP 2만불의 동일시점에서 공적 사회지출을 보면 스웨덴 34.5%(1994), 영국 19.9% (1996), 미국 13%(1988)를 포함해 OECD 평균 19.9%였습니다. 그러나 한국(2004)은 OECD 평균의 1/3에도 못 미치는 6.3%였습니다. 이것이 좌파정부라 공격받던 한국 민주주의의 참담한 공공성, 복지성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최악의 공공성, 사회성조차 더욱 탈공공화, 시장화, 친기업화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진화,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는 보수담론들은 이토록 명백한 반선진화, 반글로벌 비교통계는 왜 준거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한국이 91, 95, 99, 2003년에 각각 2.8, 3.5, 6.3, 5.7%에 불과하나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19, 19.9, 19.7, 20.7%입니다. EU 15개국 평균은 각각 22.8, 23.9, 23, 23.9%이고요. 1980년의 OECD 평균이 15.0%였음을 고려하면 80년의 2/1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주의’ ‘과도한 복지예산’이라고 비판하는 한국 시장만능주의와 보수담론의 글로벌 기준은 무엇인가요. 연간 평균 노동시간 역시 비교가 안되는 세계 최장입니다.(한국 대 세계 1991년 2672 대 1850시간, 2006년 2357 대 1777시간) 자살율은 OECD 2배에 달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악입니다. 복지파탄과 육아·교육문제로 인한 출산율은 매년 세계최저로 세계기록 자체를 경신하였지요. 출산율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삶의 피폐성과 불안정성은 우리에게 2018년부터 인구감소국가로 접어드는 초유의 불명예를 씌워줍니다.
소득분배 상황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0.248, 0.262, 0.284, 0.312로 상승 악화하고 있고,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을 나눈 소득 5분위 배열 역시 같은 기준으로 3.63, 3.94, 4.5, 5.08로 상승 악화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붕괴와 하향빈곤화를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7.3, 8.9, 10.3, 13%로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평등·빈곤의 질적 지표의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에 못지 않게 두려운 교육지표들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시장·기업주의
민주공화국가 건설에 치명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과 실질적 민주주의의 역진, 이 조합은 후자가 사회통합을 해체하여 궁극적으로 전자마저 집어삼킬 위험이 있습니다. 국가·시민사회·시장의 균형, 특히 기업·언론·종교·지역·교육에 걸쳐 이른바 ‘사회적 권력자원’의 분산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권력자원이 과점·독점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저항 아니면 독재나 파시즘으로 귀결되어 민주주의를 붕괴시켰지요. 저는 건국 60년을 넘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점이라고 봅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사회권력자원은 외려 분산이 아니라 더욱 집중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교육·언론·종교·노동·지역의 권력은 양극화를 넘어 소수 상층으로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위험한 경고입니다. 공익과 공준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론형성과 표출을 방해하며 공동지향가치를 사사화하는 재벌체제, 노동구조, 언론질서, 교육제도, 종교규모, 법률시장, 지역문제는 이제 정치제도 못지않게 한국민주주의와 공화주의(위협)의 기저요인으로 대면해야합니다. 그것은 국가의 바른 역할과 시민사회의 덕성증대와 참여확대를 통해 가능합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만남과 서로주체성은 이를 위한 출발요소요, ‘모두로부터’와 ‘모두를 위해’는 그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 민주국가들이 경제발전 이후 사회화·복지화·인간화를 위해 “자본주의 속의 사회정부”(social government in capitalism)을 견지해왔음을 고려할 때 - EU는 아예 헌법에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삽입하여 “경쟁과 사회를 결합한 시장경제”를 내놓고 있지요 -“자본주의 속의 기업정부”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미 모든 통계가 민주주의와 공화국가에 반하는 결과로 드러난 현재의 시장·기업국가 지향을 고수할 때 그 거시귀결은 가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침식은 물론 좌우로부터의 도전을 통해 훨씬 심각한 결말을 초래할지 모릅니다.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선생님의 인문적 통찰을 기다리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김상봉 선생님, 베트남 학술회의는 잘 끝내셨나요. 저는 베트남을 갈 때면 한국과의 묘한 동질성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둘은 누천년 중화체제 하에서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유지한 유이(唯二)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근대의 동아시아와 서구 제국들의 피침 경험도, 20세기 세계냉전으로 영토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을 치른 점도 같습니다. 베트남전쟁에의 한국의 참전과, 현재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해외직접투자 1위국가라는 점도 특이하지요.
미디어법 개정 시도,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 제2롯데월드 허용(왼쪽부터) 등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교육·안보 등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공공의 영역에 대해서 조차 일관되게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건국 60년의 대한민국을 저는 나름의 세 가지 사유범주를 정해 역사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려 합니다. 첫째 국가의제의 설정과 성취 여부, 둘째 분석수준으로서 국제·남북·국내 차원, 셋째 역할범주로서 국가·시장·시민사회 사이의 관계입니다.
먼저 그동안 한국사회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주의, 복지사회·인간사회의 네 가지 국가의제(national agenda), 즉 공통의 사회의제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이 의제들에 조응하는 국가공동체는 각각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사회국가가 되겠지요. 냉전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국가건설은 좌우대결과 전쟁상태 속에 생사투쟁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경제발전은 한 세대 만에 빈곤탈출과 산업화를 이루는 기적을 보여주었구요. 민주화 역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체제를 모두 시민저항을 통해 붕괴시키거나 붕괴의 단초를 마련할 만큼 놀라웠습니다.
산업화 · 민주화 등 성취 불구
개인의 행복·자유·인권 악화
국제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국가의제 성취는 세계적 성공사례였습니다. 동시에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 최전방에 위치한 이유로 이 세 의제를 달성하는데 국제사회의 기여와 후원은 안보국가 의제에서의 한국전쟁 참전, 발전국가 때의 막대한 원조, 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와 압력에서 보듯 상당히 컸습니다. 한국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첨단제품,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효과 역시 동아시아와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의 세계화 이전에 이미 건국 이래 한국은 늘 ‘들어오는 세계화’와 ‘나아가는 세계화’가 만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발전해왔습니다. 남북관계 차원에선, 분단으로 인해 인권·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는 일방 적대와 경쟁을 통하여 국가의제를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분단문제는 훗날 상세히 말씀 나눌 것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우리의 성취는 공짜가 아니라 막대한 인간적 비용을 지불한 결과였습니다. 전체 국가의제 성취를 위해 개인행복은 물론, 자유와 인권, 심지어 생명을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며 의제들을 성취한 지금 우리는 그 꿈과 희망과 희생에 값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나요?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중 시장화·기업화·양극화로 달려감으로써 형평화·복지화·사회화를 통한 공화화와 인간화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를 이루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회적 삶이 보다 안정되고 행복하며 평안하고 인간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진하고 있습니다.
건국 이후 우리는 국가주도 산업화를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이어 국가와 시장이 시민사회를 성장시키고, 다시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국가를 전복하며 민주주의를 달성해온 발전동학을 보여왔습니다. 위로부터 근대화의 전형적인 순환경로였지요. 문제는 민주화를 이룬 지금 우리사회가 압도적인 시장우위로 치달아 민주공화국가, 민주공화주의의 필수요소인 이 3자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화가 시장과 사회 기득세력의 자유화로 연결되면서 시민국가·민주국가·공화국가가 아니라 기업국가·시장국가·경제국가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독립적인 자기역할을 갖고 있어야할 안보(제2롯데월드 허용)와 교육(교과서 개정)과 언론(미디어법 개정) 영역마저 일관되게 경제·기업·시장관점에서 접근하는, 탈공화 반민주 탈공공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장유일주의의 귀결이 어떠할지 두렵습니다.
자살률 높고 출산율 세계 최악
한국사회 피폐성·불안정 증거
결국 우리는 60년 동안 민주화 이전 국가우위의 권위주의국가와, 민주화 이후 시장우위의 시장국가·기업국가는 건설하였지만 소망스런 민주공화국가는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또 안보·경제·노동·정치·주거·교육 문제는 부분적으로 해결해 왔지만 이들이 모두 응축된 한 개인의 인간적 사회적 실존에 관한 문제, 곧 인간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거나 더욱 악화시켜온 점이 없지 않습니다. 사회문제가 곧 실존문제요 실존문제가 곧 사회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즉 사회를 떠난 실존도 실존을 떠난 사회도 불가능합니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 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 역시 막중한 것이지요.
민주화 이후 구체적 통계지표를 보면 한국민주주의는 글로벌 보편으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정부의 성장정책과 사회권력자원 집중으로 인해 시장화·기업화·양극화는 빠르게 진행된 반면 형평화·복지화·인간화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양적 지표를 비교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정부들 못지않게 유능하였음에 놀랍니다. 박정희 시대 1961-70년의 평균 GDP 성장률은 8.45%, 71년-79년은 8.27%였습니다. 전두환 시기는 8.7%(80년 제외), 노태우 시기 8.36%, 김영삼 시기 7.1%, 김대중 시기 7.2%(98년 제외)로 계속 고성장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4.3%로서 1인당 국민소득은 12,826불에서 20,081불로, 수출은 1,938억불에서 3,567억불로 급상승하였습니다. DJ-노무현 시기의 경제성장은 같은 수준의 세계국가들 중 최상위급이었습니다. 이 여섯 정부 마지막해의 외환보유고를 보면 각 57억불(1979), 92억불(1987), 171억불(1992), 204억불(1997), 1214억불(2002), 2622억불(2007)이었습니다. 역시 김대중·노무현에서 급증합니다. 무역총액 및 수출 증가율, 물가상승률도 권위주의정부에 결코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내면은 완전히 보편경로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한국민주주의의 사회성, 평등성, 복지성의 완전 일탈입니다. 1인당 GDP 2만불의 동일시점에서 공적 사회지출을 보면 스웨덴 34.5%(1994), 영국 19.9% (1996), 미국 13%(1988)를 포함해 OECD 평균 19.9%였습니다. 그러나 한국(2004)은 OECD 평균의 1/3에도 못 미치는 6.3%였습니다. 이것이 좌파정부라 공격받던 한국 민주주의의 참담한 공공성, 복지성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최악의 공공성, 사회성조차 더욱 탈공공화, 시장화, 친기업화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진화,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는 보수담론들은 이토록 명백한 반선진화, 반글로벌 비교통계는 왜 준거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한국이 91, 95, 99, 2003년에 각각 2.8, 3.5, 6.3, 5.7%에 불과하나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19, 19.9, 19.7, 20.7%입니다. EU 15개국 평균은 각각 22.8, 23.9, 23, 23.9%이고요. 1980년의 OECD 평균이 15.0%였음을 고려하면 80년의 2/1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주의’ ‘과도한 복지예산’이라고 비판하는 한국 시장만능주의와 보수담론의 글로벌 기준은 무엇인가요. 연간 평균 노동시간 역시 비교가 안되는 세계 최장입니다.(한국 대 세계 1991년 2672 대 1850시간, 2006년 2357 대 1777시간) 자살율은 OECD 2배에 달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악입니다. 복지파탄과 육아·교육문제로 인한 출산율은 매년 세계최저로 세계기록 자체를 경신하였지요. 출산율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삶의 피폐성과 불안정성은 우리에게 2018년부터 인구감소국가로 접어드는 초유의 불명예를 씌워줍니다.
소득분배 상황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0.248, 0.262, 0.284, 0.312로 상승 악화하고 있고,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을 나눈 소득 5분위 배열 역시 같은 기준으로 3.63, 3.94, 4.5, 5.08로 상승 악화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붕괴와 하향빈곤화를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7.3, 8.9, 10.3, 13%로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평등·빈곤의 질적 지표의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에 못지 않게 두려운 교육지표들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시장·기업주의
민주공화국가 건설에 치명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과 실질적 민주주의의 역진, 이 조합은 후자가 사회통합을 해체하여 궁극적으로 전자마저 집어삼킬 위험이 있습니다. 국가·시민사회·시장의 균형, 특히 기업·언론·종교·지역·교육에 걸쳐 이른바 ‘사회적 권력자원’의 분산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권력자원이 과점·독점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저항 아니면 독재나 파시즘으로 귀결되어 민주주의를 붕괴시켰지요. 저는 건국 60년을 넘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점이라고 봅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사회권력자원은 외려 분산이 아니라 더욱 집중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교육·언론·종교·노동·지역의 권력은 양극화를 넘어 소수 상층으로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위험한 경고입니다. 공익과 공준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론형성과 표출을 방해하며 공동지향가치를 사사화하는 재벌체제, 노동구조, 언론질서, 교육제도, 종교규모, 법률시장, 지역문제는 이제 정치제도 못지않게 한국민주주의와 공화주의(위협)의 기저요인으로 대면해야합니다. 그것은 국가의 바른 역할과 시민사회의 덕성증대와 참여확대를 통해 가능합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만남과 서로주체성은 이를 위한 출발요소요, ‘모두로부터’와 ‘모두를 위해’는 그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 민주국가들이 경제발전 이후 사회화·복지화·인간화를 위해 “자본주의 속의 사회정부”(social government in capitalism)을 견지해왔음을 고려할 때 - EU는 아예 헌법에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삽입하여 “경쟁과 사회를 결합한 시장경제”를 내놓고 있지요 -“자본주의 속의 기업정부”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미 모든 통계가 민주주의와 공화국가에 반하는 결과로 드러난 현재의 시장·기업국가 지향을 고수할 때 그 거시귀결은 가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침식은 물론 좌우로부터의 도전을 통해 훨씬 심각한 결말을 초래할지 모릅니다.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선생님의 인문적 통찰을 기다리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