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서적

반갑습니다.
상수와 의리가 무너진 주역의 본질
더이상 주역에 매달리지 않게 하는 서적입니다.
얼마나 엉터리적인 전제에 기반한 3000년간의 동양철학이었음을
역경은 만물의 이치를 담은 서적이 아니라
단순한 점서임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서적입니다.
동양철학의 환상과 오류를 직설적으로 지적합니다.
동양철학의 기반이 엉터리에 전제한다는 것을....
동양철학의 환상을 유지하고 싶은 분은 보시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동양철학으로인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필히 보시길...
내용 중에서
계급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이론서로,
지식인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게 한 것을 지적.
후대나 당시의 시대적 상하관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역경의 본래의 뜻이 아니었다.
역경은 자시의 자화상을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단순한 재현의 서적이다.
특히 역전은 역경을 기초로 세상을 설명하는 서적이어서 권력과 권위에의 의지가 들어 있다.
역전은 역경의 은유가 아니라 상징과 철학으로 오도해 왔다.
다산은 경학의 원류를 되살리려고 했듯이,
저자 문용직은 역경의 원래의 의도를 되살리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현대 인문학과 주역의 만남
<주역의 발견>은 이성과 논리의 힘으로 주역의 본질을 들여다본 책이다. 오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3천여 주(注)와 소(疏)가 있을 정도로 그 해석이 분분한 주역이 철학서가 아닌 점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역경은 무당의 보고이고 역전은 그 설명인데, 무리하게 역경까지 체계화하려 함으로써 지금까지 오류가 거듭되었다는 입장을 현대 고고학과 기호학, 인지언어학 및 형식 논리학의 성과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 인문학이 이룬 학문적 성과를 주역에 접목시킴으로써 주역의 본질을 파헤치고, 주역을 이루는 두 구성 성분인 역경과 역전이 서로 다른 성격의 것임을 보여준다. 현대의 학문적 성과와 체계적인 논리를 수단으로 하여, 그동안 온갖 신비주의와 권위주의로 덧칠되어 온 주역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 주역은 전혀 신비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주역의 12유파와 양파 6종
주역은 하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은나라의 귀장역(歸藏易)에 대비해 주나라의 역(易)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며, ‘경(經)’과 ‘전(傳)’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모두 해서 2만 4천 자 정도로 구성되어 있단다.
그리고 그 유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해설이 분분했다. 하안과 더불어 위진 현학(玄學)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위나라 학자 왕필에 따르면, 주역은 복희씨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하도(河圖)-을 보고 계시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들고 그것을 보다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고,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에 따르면 주역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이 64괘와 괘사(卦辭) 및 효사(爻辭)를 만들었다고 한 반면, 융마라는 이에 따르면 주역은 괘사를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만들고, 십익(十翼)은 공자가 만들었다고 했다.
그에 따른 해석은 더 복잡했다. 170여 가문, 3천 여 주와 소가 있을 정도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주역을 연구하는 방식에 따라 12유파와 양파 6종으로 구분한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 중 12유파는 송말 원초 정역동(丁易東)이 『역통론(易通論)』에서 역학을 연구하는 방식을 12유파로 분류한 데서 기원한다. 반면 양파 6종은 1772년 청나라 건륭제의 주창으로 사고전서(四庫全書)가 찬집되면서, 역학의 유파를 양파 6종으로 분류한 데서 기원하는데, 두 가지 큰 흐름으로 의리파(義理派)와 상수파(象數派)로 나뉜다.
안이 아닌, 밖에서 본 주역
이쯤 되면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다는 칸트나 헤겔이 무색할 지경이다.
주역이 과연 그리도 심오하고 난해한 책인가? 사전적 지식에 따른다면 주역은 역전 ‘계사편’ 등을 통해 음양의 상호 작용을 철학의 범주로 격상시켜 세상 만사만물(萬事萬物)을 통일된 체계로 조성함으로써 진대 혹은 한대 이후의 중국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주역은 세계관 혹은 세계 체제의 문제 아닌가? 만일 그런 거라면 그리스 시대 이래 숱한 철학자들이 쏟아 놓았고, 이미 그 진위 여부가 가려지거나 아니면 진위가 문제되지 않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주역만은 어째서 아직도 해석이 구구하며, 심지어는 서양 학자들에게 노장(老莊)과 더불어 3대 현학(玄學)으로 꼽힐 정도로 난해하다고 인정받는 걸까? 주역의 이러한 난해함의 실타래를 푸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말한다.
- 주역을 알려면, 주역 속에서 헤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주역 밖에서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밖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주역을 아는(within) 것이 아니라 주역에 관해서(about) 이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meta)-주역의 관점을 지닐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문 53쪽)
현대 인문학과 주역의 만남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주역을 안이 아닌 밖에서 볼 수 있는 걸까?
저자는 현대 인문학의 학문적 성과를 접목시킴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고학과 논리학, 기호학, 인지언어학이 이룬 성과를 주역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선 고고학과 기호학, 인지언어학의 힘을 빌려 주역을 이루는 두 구성 성분 ‘역경’과 ‘역전’이 서로 다른 성격의 것임을 보여 줄 수 있다.
거짓일 수 없는 주역의 세계
저자에 따르면 8괘의 상징 내용도 설괘전에만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행이 일관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역경에는 상징이 거의 엿보이지 않으며, 방향도 없다고 한다. 역경은 8상과 같은 상징이 아니라 은유로 세상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역경 64괘 384효를 나타내는 부호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거울(mapping)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의 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손가락에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원용하면서 “거짓인 전제에서 연역된 모든 명제는 참과 거짓을 가릴 수가 없다.”고 밝힌다.
주역, 철학서가 아닌 점서
최종적으로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주역이 철학서가 아닌 점서(占書)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공자는 위편삼절(韋編三絶)에 이를 정도로 주역에 빠졌다던데…. 우리나라 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주희 같은 거유도 『역학계몽』을 남겼고, 다산 정약용 같은 실학의 선구자도 『주역사전(周易四箋)』을 남겼는데…. 하지만 그에 대해 저자는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 주역의 텍스트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고대인들의 의식과 행동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주나라 이후 분산된 권력에서 춘추전국이라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제의의 역할은 감소되고 권력과 생산, 인간의 도전이 일어선다. 소위 백가쟁명이 그 표현 아니겠는가. 점서인 역경을 역전으로 감싸 안아 그들의 정당성을 확인하려 했던 유학도 바로 그 표현 중의 하나 아니겠는가. (본문 337-338쪽)
왜 새삼 주역의 발견인가?
저자의 이 같은 결론에 거부감을 표출할 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우선 정치학 박사이지, 동양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런데 오경 중 으뜸이라는 주역에 대해 감히 점서(占書)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논리적 반박은 다음이고 우선 감정적으로도 반발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융이 그의 저서 『공시성(synchronicity)』(1973)에서 ‘주역이란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구한 답은 ‘고을은 개축해도 우물은 개조하지 않으니,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물을 길으니, 우물물이 말라버린다. 우물을 파지 않고 항아리를 부수니 흉하다’(본문 56쪽)는 것. 저자는 이것이 참으로 주역에 어울리는 적절한 답이라고 감탄한다. 그에 대한 동양학 전공자들의 의견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