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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우리의 정신분열증적 세계
카산드라 : 아폴로는 내게 이 일을 맡긴 예언가였지
합창 : 그대는 벌써 신의 솜씨에 도취해 버렸나요?
카산드라 : 물론이오, 그 무렵 나는 내 도시의 운명을 읽었으니까.
― 아이스퀼로스의《아가멤논》에서
우리 시대에 있어서 사랑과 의지에 대해 놀라운 점은, 과거에는 그것들이 언제나 인생의 곤경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되었는데, 지금은 그것들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전환기에 있어서 사랑과 의지가 더욱 어렵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는 급진적인 전환기이다. 우리들이 적응하였던 옛 신화와 상징은 사라지고 불안감이 팽배하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매달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려 한다. 우리는 하나의 사물 또는 사람을 선택할 경우 다른 사물 또는 사람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지를 행사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이 너무 불안정한 까닭에 기회를 포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합적인 정서와 과정들 ― 사랑과 의지는 이것의 중요한 두 가지 보기이다 ― 로부터 멀어졌다. 사람들 개개인은 내부로 향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설사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지라도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이다”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의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그 다음 단계는 무관심이고, 그 다음 단계는 폭력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무력감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곤경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사랑이 너무나 강조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자존심은 그들이 사랑을 성취하였는가 또는 못 하였는가에 따라서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였다. 자기들이 사랑을 찾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캘빈주의자들에게는 부(富)가 그들이 선택된 자 중의 하나라는 명백한 증거였듯이,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구원의 증거를 확신한 나머지 독선에 빠졌다. 반면에 사랑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정도가 크든 적든 간에 살 희망을 잃었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깊고 더욱 해로운 내면으로부터 그들 자존심 자체가 붕괴되었음을 느꼈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부랑자로 낙인 찍혔다고 느꼈던 것이다. 정신요법 과정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즉 반드시 특별하게 고독하거나 불행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인생의 중요한 비밀을 잃어버렸다는 괴로움이 스물거리기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곤 하였다고 고백을 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그동안 줄곧 상승하는 이혼율, 문학과 예술에서의 늘어나는 사랑의 진부(陳腐)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섹스가 유용하면 할수록 더욱더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랑>은 완전히 환상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극히 포착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정치적으로 뉴 레프티스트(Leftist)인 몇몇 사람은 사랑은 부르주아 사회의 본질 바로 그것 때문에 파괴되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개혁은 사랑이 보다 가능한 세계를 만들려는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모순된 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사랑의 성적(sexual) 형태 ― 이것은 구원의 사닥다리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공통분모이다 ― 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것은 섹스(性)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생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어서 최소한 사랑의 모사품(模寫品)을 항상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섹스는 역시 서구인에게는 구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험과 짐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과 섹스의 기교에 관한 책들은 아직도 수주일 씩 계속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공허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의 수단으로서 기교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광적인 기질이, 우리가 찾고 있는 구원을 상실해 버릴 정도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어 버렸을 때에 더 빨리 뛰는 것은 인간의 오랜 그리고 아이러니컬한 습성이다. 그래서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들은 섹스에 대한 조사, 통계 그리고 기술적 보조물 등을 더욱 열심히 찾는다.
킨제이의 보고서나 매스터즈 존슨의 조사는 그 자체로서 어떠한 장점과 단점을 갖든지 관계없이 사랑의 인격적 의미를 점차 상실해 가는 문화적 징후이다. 일찍이 사랑을 동기 부여해 주는 힘, 즉 우리로 하여금 계속 살아가게끔 밀어 주는 믿을 만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커다란 변화는 이제 원동력 그 자체가 문제시됨을 보여 주고 있다. 사랑은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사랑이 대단히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가족생활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이란 가족 중 보다 강력한 자가 다른 구성원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명칭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이란 폭력의 은폐물이라고 로널드 렝은 주장한다.
의지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조상들로부터 삶에 있어서 유일한 실제적인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일뿐이며, 이때 <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그 결정된 일을 행하도록 하는 <능력>으로서, 자동적으로 갖춰져 있기 마련이라는 믿음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의지 자체가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의지는 환상인가? 프로이트 이래로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병리학가들은 의지가 환상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어휘 가운데에서는 필수적이었던 <의지력>과 <자유 의지>라는 말이 오늘날의 교양 있는 토론에서는 거의 완전히 빠져버렸거나 조롱거리로 밖에 쓰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의지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고 임상의에게 간다. 즉, 자신의 삶에 방향을 제시할 <무의식>을 얻는 방법을 배우거나, 또는 자신들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끔 해줄 최신의 조건 만들기 (어떤 자극에 대하여 일정한 반응을 나타내나 다른 자극에는 나타내지 않는 경우 훈련에 의해서 후자의 자극에도 같은 반응을 나타내도록 하는 과정) 기술을 배우거나, 또는 생활의 동기를 부여해 줄 새로운 약의 사용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임상의를 찾아가는 것이다. 또는 감정이란 그 자체로서 추구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 상황에 몰두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사실도 모르고서 최신의 <감정 발산>법을 배우러 간다.
그리하여 무엇을 <위하여> 상황을 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레스리 파아버는 그 의지에 관한 연구에서, 이 의지의 좌절 속에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병리 현상이 놓여 있으며, 우리 시대는 <혼란된 의지의 시대>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급격한 전환기에 있어서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의식 속으로 쫓겨 들어간다. 사랑과 의지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거의 파괴되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의식의 표면을 뚫고 내려가서 자신의 의식과 우리 사회의 <불명료한 집단의식>(collective unarticulated consciousness)의 내부에서 사랑과 의지의 원천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원천>이라는 말을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강(江)의 <원천> ― 물이 최초로 솟아 나오는 샘 ― 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가 사랑과 의지가 솟아 나오는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본질적인 경험들이 우리가 움직여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탐구는 그러한 모든 탐험들처럼 도덕적인 탐구이다. 이는 우리들이 새로운 시대의 도덕이 근거할 수 있는 기반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내 종족의 아직 창조되지 않은 양심을 벼리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라고 말한 스테펀 데달루스의 처지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낼 것이다.
이 장의 제목에 나오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것. 느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말을 정신병리학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일반적인 조건 및 그 구성원들의 성향이라는 의미로서 사용한다. 정신분열증을 개인적 정신병리학의 관점에서 기술한 안소니 스톨(Anthony Storr)는 “정신분열증 환자는 냉담하고 무관심하며 우월감을 갖고 고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난폭한 공격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 스톨은 이 모든 것들이 억압된 사랑에의 갈망에 대한 복합적인 가면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괴리성은 적대감에 대한 방어의 표현이며 유아기의 사랑과 신뢰의 왜곡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이 왜곡이 그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실제적인 사랑을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스톨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정신분열증적 상태는 전환기적인 우리 시대에는 일반적인 경향이며, 스톨이 언급한 유아기의 <막막함과 무관심의 체험>은 비단 부모에게서 올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거의 모든 면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부모들 자신도 막막한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그들의 문화를 표현해 주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기계적 인간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그것은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 그 이용이 점차 증대하고 있지만 폭력으로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의 <정상적>인 의미에 있어서 정신분열증은 억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이 정신분열증적 성격의 상태가 후에 정말로 정신분열증다운 상태로 악화되어 버릴 것인지의 여부는 미래에 가서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각 환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가 정신분열증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에 대처한다면, 대부분의 환자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이런 일이 쉽사리 일어나지는 않는다. 안소니 스톨은 계속해서 정신분열증적 성격이 “자신은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확신과 자신이 비판에 의해 공격을 받고 모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스톨의 진술을 평가할 때, 거기에는 하나의 결함이 있다. 그가 정신분열증적 환자의 실제 보기로서 프로이트,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그리고 베토벤을 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데카르트와 쇼펜하우어의 경우 그들의 철학을 탄생시킨 것은 그들의 사랑으로부터의 소외감이다.” 라고 말하면서 베토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현실적 인간에의 실망과 분노에 대한 보상으로서 베토벤은 사랑과 우정의 이상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음악은 아마도 다른 어떤 작곡가의 음악보다 더욱 명백하게 힘이 라는 의미에서 엄청난 공격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자신의 적대감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없었을 경우 편집병적(偏執病的) 정신병으로 쓰러지게 되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톨의 딜레마는 만일 그들이 당시에 정신병자로 여겨 치유되었더라면, 우리가 그들의 창작물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분열증적 상태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을 처리하는 건설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문화들은 정신분열증적인 사람들을 창조적이 되도록 촉진시켜 준 반면에, 우리 문화는 그들을 보다 더 고립되고 기계적이 되도록 하였다.
사랑과 의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있어서 나는 우리 시대의 적극적<긍정적>인 성격과 개인적인 성취의 잠재력을 잊지 않는다. 한 시대가 그 정박지를 떠나 표류하고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의 힘에 의존할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려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각 개인이 가장 힘을 적게 갖고 있을 때 힘을 달라는 부르짖음과 외침이 가장 크게 되는 것 또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바로 그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 문제들은 아직 적절하게 평가되지 못한 한 가지 기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시기의 문제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의 실존적인 위기이며, 우리가 <해결된다>는 말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와 관계없이, 만약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직 절망이 있을 따름이고 위기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심리학적 수수께끼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표현한다. 우리가 세계와 접촉하면서 세계가 우리에게 부적합하다든지 우리가 세계에 부적합하다고 판명되는 때에 문제는 발생한다. 즉 예이츠(Yeats)가 다음과 같이 표현했듯이 무엇인가가 상처를 입고 충돌할 때,
우리는‥‥‥ 느낀다
상처의 고통을,
우리를 찌른 창(槍)의 고통을‥‥‥
1.1. 예언자로서의 문제들
나는 자신의 갈등과 직면하여 그것을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정신분석 임상의로서 열심히 일했던 25년간의 경험에 기초하여 이 책을 집필한다. 특히 지난 10여 년의 기간 동안 이 갈등들은 일반적으로 사랑이나 의지의 어떤 면들이 잘못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임상의는 항상 <탐구>, 즉 근원에 대한 <탐구>에 종사하거나 마땅히 종사해야만 한다.
이 점에 관해서 나의 동료인 실험 심리학자들은 임상에서 얻어지는 자료들은 수학적으로 공식화될 수 없으며 문화에 대한 심리적인 <부적응>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나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이와 동시에 철학자 친구들은 인간에 관한 어떠한 모델도 신경증이나 성격 파탄에서 얻어진 자료에 그 핵심적인 기초를 둘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하여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실험실 속에 파묻혀 있는 이들 심리학자나 서재에 틀어박힌 철학자들 중 그 누구도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우리가 치료받는 사람들로부터 대단히 중요하고 때로는 특이한 자료들,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교적 대화에서 모든 것을 그 뒤에 숨기는 관습적인 허식과 위선과 방어를 벗어 던졌을 때만이 드러나는 자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람들이 자기 문제의 깊은 뿌리를 드러내는 고통과 불안을 감수하는 것은 정서적 정신적 고통의 위기 상황 ―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정신요법의 도움을 받도록 유도하는 상황이다 ― 에서뿐이다. 또한 만약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제공할 수 없는 기묘한 상황도 있는 것이다. 설리번이 정신요법에 있어서의 탐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점은 아직도 그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만큼이나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만일 면접이 환자를 도우려고 계획된 것이 아닐 경우, 당신은 실제적인 자료가 아닌 가공의 자료들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환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피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정보는 환자의 직접적인 갈등과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아주 직접적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의 풍부함은 해석상의 어려운 점을 보상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공격성이 좌절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논의하는 것과 분노나 공포로 타오르는 눈, 마비 상태에 이른 모습 등 환자의 긴장을 보는 것, 그리고 자기 잘못이 아닌 데도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아버지가 자기를 매질했던 20년 전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 순간 나를 포함하여 방 안에 있는 모든 아버지와 같이 생긴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터뜨리며 고통으로 거의 질식할 것 같은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듣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한 자료들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경험적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론의 기초를 <부적응>의 사례들로부터 얻은 자료에 두는 것에 대한 위의 의문에 대해 이번에는 내가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모든 인간의 갈등은 개인의 특이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도 보여 주지 않는가?” 라고 이의를 제기하겠다. 소포클레스가 우리들에게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연극을 통해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차례로 보여주었을 때, 그는 단순히 한 개인의 병리 현상에 관해서만 썼던 것은 아니다. 정신요법은 대상이 된 개인의 가장 특수한 성격과 사건들을 추적하며 이 점을 망각하는 어떠한 치료도 김빠지고, 비실제적이고, 모호한 일반성 속에 빠짐으로써 약화되기 마련이다. 정신요법은 또 개인의 인간적 갈등의 요소들을 추적하며, 이 점을 망각할 때 어떠한 치료도 환자의 의식을 위축시키고 그의 삶을 더욱 진부하게 만들기 십상일 것이다.
정신요법은 각 개인의 긴급한 병리 상태와 더불어 인간을 더 인간이게끔 하는 원형적 특성들을 <동시에> 밝힌다. 이 특성들이 치료 대상이 된 환자에게 있어서 특수하게 왜곡되어 전자, 즉 심리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 환자의 문제에 대한 정신요법적 해석은 문학에 있어서 원형적인 형태로 보이는 인간의 역사를 통한 자기 해석의 부분적 계시이기도 하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보기를 들어 보자. 아이스퀼로스(Aischylos)의 오르테스와 괴테의 파우스트는 주어진 두 작중 인물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한 작품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까지 소급되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독일의 작품이지만 이 둘은 모두 어느 시대 어떤 종족에 속하든 우리 모두가 성장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자신이 지닌 온갖 힘을 다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고 창조하려고 노력하고, 죽음을 포함한 생활 속의 다른 모든 문제에 대처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투쟁을 표현하고 있다. 전환기 즉 <정신요법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치 중의 하나는 우리들이 개인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조차도 영원한 인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여러 특성들을 보다 깊이 관찰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의 환자들은 문화 속의 무의식적이고 잠재의식적인 경향들을 표현해 주고 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신경증 환자>, 또는 <성격 혼란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문화의 일반적인 보호 장치가 그를 위해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이 일반적으로 괴로운 상태를 그 자신이 다소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특정 지워진다. <신경증 환자>, 즉 <성격 혼란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문제들이 너무 심각해서 일, 교육, 종교 등과 같은 문화의 정상적인 제도들에 그 문제를 의뢰하여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환자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거나 적응하려 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다음 두 가지의 서로 관련된 요인 가운데 어느 하나, 또는 둘 모두에 기인할 것이다.
첫째는 생활 속에서 어떤 외상(外傷)의 경험, 또는 불행한 경험을 겪어 평균적인 사람보다 민감해지고 불안감을 조정할 능력이 줄어드는 점이다. 둘째는 그로 하여금 나타내도록 밀어대고, 이것이 봉쇄될 때 병에 이르게 하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독창성과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1.2. 예술가와 신경증 환자
가끔 신비스럽다고 생각되는 예술가와 신경증 환자 사이의 관계는 여기에 제시된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예술가와 신경증 환자는 모두 사회의 잠재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심층에서 말하고 살고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동료들에게 전달해 주면서 적극적(긍정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이를 소극적(부정적)으로 행한다. 그는 자기 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의미와 모순을 동일하게 경험하지만, 자기 경험을 동시대(同時代)의 사람에게 전달 가능한 의미로 구성해내지 못한다.
예술과 신경증은 모두 예언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무의식의 수준에서 솟아 나오는 의사 전달이기 때문에 감광(感光)된 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가장 선두 부분에서 사는, 말하자면 한 발을 미래에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 있는 인간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허버트 리이드경은 예술가가 자기 종족의 미래의 과학적, 지적 경험을 예견한다고 주장하였다. 고대 이집트 신석기 시대의 항아리에 삼각형 모양으로 그려진 갈대 무늬와 따오기다리 무늬는 후에 이집트인들이 별을 관찰하고 나일강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게 된 기하학과 수학의 뒤늦은 발전에 대한 예언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보이는 그리스 인의 뛰어난 비율 감각에서, 로마 건축의 훌륭한 돔(dome) 양식에서, 그리고 중세의 성당에서 리이드(歌曲)는 예술이 주어진 하나의 역사적 시기에 아직 의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후일 철학자, 종교 지도자, 그리고 과학자에 의해서 공식화될 의미와 경향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추적하였다. 예술은 미래의 사회적 기술적 발전을 표면적인 변화일 경우에는 한 세대 정도, 수학의 발견처럼 심층적인 변화일 경우에는 수세기나 앞서서 예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적인 갈등이 사회 전반에 의식적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가들이 그 갈등을 표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표현을 빌면 종족의 더듬이인 예술가는 그가 자신의 세계와 투쟁하고 그것을 형성할 때 자기 자신의 존재 내부에서 경험하게 되는 의식의 심층을 그만이 창조할 수 있는 형태로 밖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곧장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화가, 극작가, 그리고 다른 예술가에 의해 표현된 세계는 정신분열증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과 의지라는 과제를 특히 어렵게 만드는 우리 세계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부터 우리를 엄습하는 굉장히 발달된 의사 전달 수단의 소용돌이에서 이 세계는 실제적인 개인의 의사소통을 지극히 어렵고 드물게 만든다. 리차드 질맨이 상기시켜 주듯이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극작가는 바로 이러한 의사소통의 상실을 주제로 다룬 사람들이다. 즉, 이오네스코, 쥬네, 베켓트, 핀터 등과 같이 우리들의 인간으로서의 현재의 운명이 각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거의 단절되어 버린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임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다. 베켓트의 <크래프의 마지막 테이프>(Krapp's Last Tape)라는 작품에서와 같이 우리들은 녹음테이프와 이야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즉 우리들 가정에 라디오, TV, 그리고 전화기의 수가 늘어갈수록 우리의 존재는 더욱 고독하게 된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The Bald Soprano)라는 연극의 한 장면을 보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연히 만나서 <비록 틀에 박혀 있지만> 정중하고 예의바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둘 다 그날 아침 뉴 헤이븐에서 열시 기차를 타고 뉴욕에 왔으며, 놀랍게도 두 사람의 주소가 5가에 위치한 같은 건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가 막히게도 그들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둘 다 일곱 살 난 딸이 있다. 마침내 그들은 자기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다.
우리는 화가 가운데서도 동일한 경우를 발견한다. 현대 미술 운동의 아버지로 공인되고 있고, 생활에 있어서는 모든 중산층의 프랑스인이 그러했듯이 평범하고 부르주아적 세잔은 공간과 돌과 나무와 얼굴로 이 정신분열증적 세계를 그렸다. 그는 우리에게 기계적인 옛 세계로부터 말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세계에서 살도록 한다. 메를로 뽕띠(Merleau Ponty)는 세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과 관계를 넘어서 있다. 원인과 결과는 영원한 세잔의 동시성 속에서 결합되어 있는데, 그는 스스로 되고자 하였고 동시에 이루고자 하였던 그 동시성의 틀인 것이다. 세잔의 작품은 그 질병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신분열증적 기질과 그의 작품 간에는 일치 관계가 성립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분열증적인 것과 세잔적인 것은 결국 동일한 것이 된다.”
오직 정신분열증적인 사람만이 정신분열증적 세계를 그릴 수 있다. 즉 우리 시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정신적 갈등을 꿰뚫을 수 잎을 만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만이 현재의 우리 세계를 더욱 깊이 있는 형태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예술에 의한 우리 세계의 포착에 기술의 비인간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효과가 있다. 정신분열증적 성격은 비인간화시키는 세계와의 직면과 그것의 비인간화에 대한 거부 속에 모두 자리 잡는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의식의 보다 깊은 면을 발견하여 우리가 표면적인 겉모습 밑에 있는 인간의 경험과 본질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기는 정신병이 그가 지각(知覺)한 것을 화폭에 담으려는 그의 격렬한 투쟁과 무관하지 않았던 반 고흐의 경우에 더욱 명백할지도 모른다. 또는 지나치게 현란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피카소의 경우도 그러하다. <게르니카>의 산산조각이 난 황소와 갈갈이 찢겨진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또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번호만 매긴 그림들과 눈과 귀의 위치가 잘못된 초상화에서 현대의 정신분열증적 성격에 대한 통찰력이 보인다. 로버트 머더웰이 “이 시대는 예술가가 공동체를 갖지 못한 최초의 시대인데 그도 우리 모두처럼 그 자신의 공동체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언급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는 인간의 파괴된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그것을 예술로 변형시키는 행위에서 그것을 초월한다. 허무주의, 소외감, 그리고 현대 인간 조건의 다른 요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의 창조적 행위이다. 메를로 뽕띠가 세잔의 정신분열증적인 기질에 관하여 적은 것을 다시 인용하면, “따라서 질병은 터무니없는 사실이거나 운명이기를 그치고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가능성이 된다.”
신경증 환자와 예술가는 모두 다 종족의 무의식적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이후에 그 사회에서 풍토병적으로 일어 날 것을 우리들에게 미리 드러내 준다. 신경증 한자는 자신의 허무, 소외 등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동일한 갈등을 느끼지만 그러나 그것들에 의미 있는 형식을 부여할 수 없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 갈등들을 창조적인 작품으로 형성할 수 없는 무능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부정할 수 없는 무능력 사이에 사로잡혀 있다. 오토 랑크가 말하였듯이, 신경증 환자는 <실패한 예술가>, 즉 자신의 갈등을 예술로 변형시킬 수 없는 예술가이다.
이것을 현실로서 단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창조적 인격체로서의 자유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유의 기초도 부여한다. 이렇게 본다면 처음부터 우리 세계의 정신분열증적 상태와 직면하는 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사랑과 의지를 발견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3. 예언자로서의 신경증 환자
우리의 환자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분간 <의식하지 않고서>(무의식적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활함으로써 문화를 예언한다. 신경증 환자는 운명적으로 카산드라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된다. 아가멤논이 카산드라를 트로이에서 미케네로 다시 데려다 놓았을 때에, 그녀는 미케네 궁전의 계단에 앉아서, “오, 나이팅게일의 순수한 노래와 그녀와 같은 운명을 위하여!” 라고 외쳐댔지만 헛된 일이었다. 그녀는 불행을 타고난 자신의 생애에서 <슬픔의 노래가 넘치는 고통이 [그녀] 혼자만의 것>이라는 것과 눈에 보이는 파멸이 거기에서 일어나리라고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케네인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말했지만, 그들도 그녀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미래를 예언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었다. 오늘날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피 속에 시대의 갈등이라는 짐을 지고 있고, 앞으로 사회의 모든 면에서 폭발하게 될 사건들을 자신의 행위와 투쟁 속에서 예언해야 하는 운명 속에 살고 있다.
이 논제에 대한 최초의 가장 명확한 증거는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20년 동안 프로이트가 빅토리아 시대의 환자들 속에서 발견한 성적 문제에서 보인다. 이러한 성적인 주제들은 ― 그 말 자체까지도 ― 당시 그 사회에서는 완전히 거부되고 억압되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20년 동안 풍토병처럼 맹렬히 번져나갔다. 1920년대에는 누구나 섹스와 그 기능에 대해 몰두하였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프로이트가 이것의 출현을 <야기했다>고는 아무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환자들이 보여 준 자료를 통해서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얼마 동안 억제 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억제하였던 사회의 근저에 놓여 있는 갈등을 반성하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신경증적인 문제들이란 사회적인 인식 안으로 부각되는 무의식의 언어인 것이다.
두 번째로, 첫 번째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보기가 1930년대의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대단히 많은 적대감에서 보인다. 이것은 특히 호니에 의해 지적되었는데, 이후 10년 동안 더욱 널리, 그리고 공개적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적인 현상으로 부각되었다.
세 번째의 주요한 보기는 불안의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나 자신을 포함한 몇몇 임상의들은 많은 환자에게 있어서 불안이 <억압이나 병리의 한 징후로서만이 아니라 일반화된 성격 상태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상 깊게 보았다. 불안에 관한 나의 연구와 호바트 모우러를 포함한 다른 학자들의 연구는 194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불안을 병리의 한 징후로 보았을 뿐, 그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돌이켜보건대, 1940년대 후반에 박사 학위 구술시험에서 내가 정상적 불안의 개념에 대해서 말하자 교수들은 경의를 표하는 듯한 침묵으로 그렇지만 상당히 언짢은 표정을 짓고 내 말을 들었다.
예술가들은 예언적인 까닭에 시인 오든은 1947년에 <불안의 시대>(Age of Anxiety)를 출간하였고, 그 직후에 베른슈타인은 이 주제에 의한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 당시에 카뮈는 이 <공포의 세기>에 관하여 집필하고 있었으며, 카프카는 벌써 그 소설 속에서 다가오는 불안의 시대에 대한 강력한 삽화들을 창조해 냈지만, 이들 대부분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었다. 정상적인 일이지만 학문적인 성과의 공식화는 환자들이 우리에게 말해 주려고 했던 것보다 시간적으로 뒤떨어진다. 이리하여 1949년에 <불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미국 정신 병리 학회의 연례 회의에서는 내가 제출한 논문에 제시된 정상적 불안이라는 개념이 참석한 대부분의 정신병 의사와 심리학자에 의해 여전히 부정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에는 급격한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누구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도처에서 그 문제에 관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제 <정상적> 불안이라는 개념이 정신병리학의 문헌에서도 점차 채택되게 되었다. 신경증 환자는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도 누구나 자신이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줄곧 예술가들에 의해 표현되어 왔고, 우리의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던 것이 이제는 이 나라의 풍토병처럼 되어 버렸다.
네 번째 논점은 바로 우리시대의 쟁점인 정체성의 문제다. 이것은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에 임상의들이 그들의 환자에게서 발견하고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문제였다. 그것은 1950년 에릭슨의 <유년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 1950년 필자의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Man's Search for Himself), 1958년 알렌 휠리스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The Quest for Identity), 그리고 그 밖에 정신요법과 정신분석에 대한 여러 해석가의 심리학적 연구로부터 얻은 자료에 근거하여 서술되었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정체성의 문제는 모든 지적으로 세련된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것은 <뉴요커>지의 풍자화에 <단골 손님>이 되었으며, 그것과 관련되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그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람에게 정체성을 제공해 주던 문화적 가치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환자들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되기 <이전에> 이미 이것을 인식했으나 그들은 그 산란하고 충격적인 결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보호책을 갖지 못했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유행의 오르내림에 관련된 어떤 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들을 <단순한> 유행으로 처리해 버린다고 해서 심리적인 문제와 사회 변동의 역동적인 역사적 출현을 전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반 덴 버그는 그의 고무적이고도 자극적인 한 책에서, <모든> 심리학적인 문제들이 문화의 사회 역사적 변화의 소산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사회 변동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성이 있을 뿐이며, 따라서 환자의 갈등은 <신경증>이라기보다는 <사회병>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우리가 반드시 그의 주장을 모두 추종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한 보기로 나는 심리학적 문제들이 생물학적, 개인적 역사 사회적인 요인들이라는 삼각형의 꼭지점들의 변증법적인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심리학적 문제들이 <뜻밖에>, 또는 단순히 사회가 그 문제를 이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가정하거나, 또는 그것들을 지칭할 새로운 단어를 찾아냈기 때문에 문제가 존재하게 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극히 조잡하고 파괴적인 지나친 단순화라는 점을 그는 분명히 했다. 중요한 무엇인가가 무의식적이고 불명료한 수준에서 발생하면서 표현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낱말들을 <발견>하며 우리의 과제는 이렇게 막 부상하려는 발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대부분 정신요법가가 무의식을 일깨워 줌으로써 해방될 수 있는 억압된 에너지를 가진 히스테리 환자들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모든 환자들이 강박 관념적 신경증 (또는 이것보다 더 일반적이고 강렬하지 않는 약한 형태인 성격 문제) 환자인 오늘날 치료의 주된 장애는 환자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환자들은 지금부터 최후의 심판날까지라도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떠벌릴 수 있는 자들로서 일반적으로 잘 훈련된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감정을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이 강박적인 사람들을 “살아 있는 기계들”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데이비드 샤피로는 그의 저서에서 이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강박 관념적 환자들의 <생활과 사고에 나타난 억압과 단순함>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에 라이히는 20세기 환자들의 문제를 통찰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의 선두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1.4. 혼란된 의지의 시대
앞에서 나는 우리 시대가 “혼란된 의지의 시대”라고 불려져야 한다는 레스리 파아버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 혼란된 의지의 저변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가?
나는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기 위하여 나 자신의 추론을 계속해 나가겠다. 나는 그것이 감정이 없는 상태,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는 절망적인 가능성, 무감동(apathy)에 대단히 가까운 상태라고 믿는다. 파멜라 존슨은 영국의 습지 지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우리들은 심리학자가 말하는 감정이 없는 상태에 가까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만일 무감동이나 무감정이 우리 시대에 새롭게 부상해 오는 지배적인 분위기라면, 우리는 왜 사랑과 의지가 그렇게 어렵게 되었는가를 더욱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50년대에 우리의 환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예언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뚜렷한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1952년에 집필되고 그 다음 해에 펴낸 나의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의 동료 심리학자 및 정신병 의사의 임상 경험은 물론 나 자신의 임상 경험에 입각하여 20세기 중반 10년간에 있어서 사람들의 핵심적인 문제가 <공허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충격적으로 들리리라.
10년이나 2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인간의 의미 없는 지루함을 비웃었는데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허는 권태의 상태로부터 위험의 가망성이 있는 무용(無用)과 절망의 상태로까지 발전해 갔다.
‥‥‥ 인간이란 공허의 상태에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살 수 없다. 만일 무엇인가를 <향하여> 발전해 나가지 않는다면 그는 단순히 침체되는 것만이 아니다. 억압된 잠재력이 병적인 상태와 절망으로, 그리하여 결국은 파괴적인 행동으로 전환되어 갈 것이다.
공허<감>이나 또는 허탈<감>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무력하여 자신의 삶이나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아무런 효과적인 것을 할 수 없다는 느낌에서 생겨난다. 내적 공허감은 한 개인의 자기 자신에 대한 특별한 확신, 즉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이 실체로서 행동할 수 없다거나 또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를 변경시킬 수 없다거나, 또는 자신을 에워싼 세계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쌓여진 결과이다. 이리하여 그는 우리 시대의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절망감>과 <무용(無用)감>을 갖게 된다. 그런 다음 곧 그가 원하는 것과 그가 느끼는 것 사이에 아무런 실질적인 차이가 없게 되기 때문에 그는 희망과 감정을 포기하게 된다.
‥‥‥ 무감동과 감정의 결핍은 또한 불안에 대한 방어이다. 한 개인이 끊임없이 위험에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할 힘이 없을 때, 그의 마지막 방어선은 종국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것조차 피해 버리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 문제는 우리들을 그 기초부터 흔든 몇 가지 사건의 형태로 폭발하였다. 우리들의 <공허감>은 절망과 파괴, 폭력과 암살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제 이것들이 무감동과 같은 보조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1964년 3월 27일자 <뉴욕 타임스>지는, “반시간이 조금 지나는 동안이나 퀸즈 구역에 사는 38명의 존경받을 만하고 준법정신이 강한 시민들이 한 살인자가 국립 식물원에서 한 여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세 번에 걸쳐서 칼로 질러 죽이는 광경을 구경하였다” 고 보도하였다. 같은 해 4월 이 신문은 한 떼의 군중이 호텔 난간에 매달려 있는 미친 젊은이를 보고 “병아리 새끼”니 “겁쟁이”니 하고 놀리면서 뛰어내리기를 충동질한 다른 사건에 대해 감동적인 한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이 콜로세움에서 사람과 야수가 서로 갈기갈기 찢기는 싸움을 할 때 분노의 눈을 이글거리면서 구경하며 환호한 로마인들과 무엇이 다를까?‥‥‥ 저 알바니(오클랜드 소재)의 그 군중들의 태도가 많은 미국인의 생활 방식을 나타내고 있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종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 해 5월 <타임스>지의 한 논설은 "강탈당하는 비명 소리에 40명이 구경만"이라는 표제로 시작되었다. 비슷한 사건들인 그 이후 수개월 동안에도 연이어 발생하였는데, 우리는 그 사건들로 인하여 무감동으로부터 깨어나서 우리가 얼마나 무감동하게 되었는가를, 그리고 현대의 도시 생황이 우리 안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는 습성과 냉혹하리만큼 고립적인 성질을 얼마나 많이 키워왔는가를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특정한 사건을 과장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것인가를 늘 알고 있기에 나의 경우를 과장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생활에 대한 태도, 즉 한 성격 상태로서의 무감정의 상태로 향하는 명확한 추세가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일찍이 지성인들이 성찰한 바 있는 사회적 도덕적 무질서(아노미) 현상이 이제 바로 우리의 거리와 지하도에서 소름끼치는 현실로서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단히 많은 우리와 동시대인들에 의해 보고된 이 상태 ― 소원함, 냉담한 태도, 소외, 감정의 결핍, 무관심, 도덕적 무질서, 인간화 ― 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이들 각각의 용어들은 내가 언급한 상태 ― 부부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애정과 의지를 자극시켜 주던 대상들 간의 거리감을 경험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 상태 ― 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잠시 이것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덮어두고자 한다. 내가 그 제한된 내포에도 불구하고 <무감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 글자 자체의 의미가 내가 묘사하고 있는 것 ― <감정의 결핍, 정열, 정서 또는 흥분의 결여, 냉담> ― 과 가장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무감동과 정신분열증적인 세계는 상호의 원인과 결과로서 병존한다.
무감동은 사랑 및 의지와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감동이다. 의지의 반대는 우유부단이 아니라 ― 우유부단은 윌리엄 제임tm가 주장하듯이 실제로는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투쟁을 의미할 수도 있다 ― 중요한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계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이때 의지의 문제는 결코 야기되지 않는다. 사랑과 의지의 상호 관계에는, 두 개념이 모두 시계를 향하여 손을 뻗치면서 그곳으로 나아가고, 타인이나 무생물계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며, 자신을 외부로부터의 영향 앞에 드러내 놓는, 즉 세계를 형성하고 세계에 자신을 관계시키거나, 또는 세계가 자신에게 관계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 속에 내재해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친숙한 정박지가 사라져 버린 전환기에는 사랑과 의지가 대단히 어렵게 된다. 우리가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통로의 차단이 사랑과 의지의 본질적인 혼란이다. 무감동, 즉 무정서(a-pathos)는 감정의 철수이다. 그것은 냉담한 태도, 즉 개입하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고의적인 상습적 행위로서 시작될 수도 있다. 국립 식물원에 있었던 38명의 사람들이 왜 보고만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처럼 작용하는 무감동은 사람들이 생명 그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까지 개입을 점점 더 어렵게 한다.
사회를 참신한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은 너무 단순화된 방식으로 사회를 제도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보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명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에서는 지적 생활의 흥분에 대한 어떠한 정열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라고 콜롬비아 대학교 <목격자>(Spectator)지의 편집장은 말하였다. <미쉬간 데일리>지의 한 학생 칼럼니스트는 “이 학교는 적어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지적 욕구에 접근하는 그 무엇을 터득시켜 주는 데 있어서 참담하게 실패하였다.”라고 썼다. 그는 “범용보다 더 나쁜 무엇인가를 향한 표류, 그것은 절대적인 무관심, 어쩌면 심지어 인생 그 자체에 대한 무관심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 캘리포니아 대학생은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IBM카드에 뚫린 구멍으로 구분되어 있다.” 라고 말하였다. “우리들은 1964년의 소요에서 징집 카드를 무효화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그러나 이곳에서의 <진정한> 혁명은 징병 카드뿐만 아니라 컴퓨터 카드까지도 불태워 버리기로 결정할 때 도래할 것이다.”
무감동과 폭력 사이에는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무감동 속에 사는 것은 폭력을 불러일으키며 폭력은 위에서 인용한 사건들의 경우처럼 무감동을 촉진시킨다. 폭력은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진공을 채우기 위하여 쇄도해 오는 궁극적이고 파괴적인 대체물이다. 폭력에는 음화와 외설 등의 다양한 현대 예술의 형식을 취한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충격으로부터 ― 그것들은 우리의 생황 양식에 폭력을 가해 소기의 반응을 얻는다 ― 암살의 극단적인 병리와 습지대의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가 다양하다. 내면생활이 고갈되어 갈 때, 감정이 메마르고 무감동이 증대할 때, 사람들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거나, 또는 타인과 진정한 <접촉>을 할 수 없을 때, 폭력은 접촉을 위한 다이몬적인(daimonic) 필연성, 즉 가능한 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촉을 강요하는 광적 충동으로서 불타오른다. 이것이 성적 감정과 폭력 범죄 간에 잘 알려진 관계의 한 단면이다. 고통과 고문을 가하는 것은 최소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매스컴에서 소외된 상태 속의 평균적인 시민은 어느 날 저녁 미소를 지으며 자기 거실로 들어오는 수십 명의 TV 탤런트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결코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참기 고통스러운 이 소외와 무명(無名)의 상태에서 평균적인 인간이 실제적인 병리의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환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없거나 감동을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적어도 너에게 충격을 가해 어떤 느낌을 갖게 할 수는 있다고 하는 무명인의 기분은 상처와 고통을 통해 사람들을 어떤 격정으로 몰아넣게 되는데, 그것은 나는 적어도 우리들이 함께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아가서 네가 나를 알아보게 하고 나도 또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은 파괴적인 행위로써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하도록 하였는데, 비록 그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회는 적어도 그를 주목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증오를 받는 것은 적극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무명성과 고독감이라는 극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무감동의 심각한 영향을 살펴 본 후 우리는 그 무감동의 필요성과 <정상적인 정신분열증>의 형태에 있어서 그것이 어떻게 건설적인 기능으로 변모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비극적인 역설은 우리 시대에는 어떤 종류의 무감동에 의해 우리들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설리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감동이란 기묘한 상태이다. 너무 오래 지속되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피해를 입게 되지만 물질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채 패배를 견디어 내는 데 이용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에게는 무감동이란 크게 실패한 사람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경이적인 보호책으로 생각된다.” 그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무감동도 그만큼 더 연장된다. 그리고 그것은 조만간 한 성격 상태로 굳어지게 된다. 이러한 무감정은 끊임없는 요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움츠리는 것이며, 너무 지나친 자극에 직면하여 얼어붙는 것, 즉 어떤 흐름에 대응했다가는 그것에 압도될까 두려워서 그 흐름이 지나가도록 회피하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엄청난 소음과 무명의 군중들로 혼잡한 지하철을 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것에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분열증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리만큼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는가를, 즉 라디오와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과 소음의 홍수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고, 집단화된 공장과 거대한 공장형의 여기저기 건물이 분산되어 있는 종합대학교의 일관 작업 요구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나는 길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질식시켜 화석으로 만들어 버릴 듯한 기세로 흐르는 용암처럼 숫자(數字)가 우리의 신분 증명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세계에서, <정상>이란 곧 냉정한 태도라고 정의되는 세계에서, 섹스가 매우 유용한 것이어서 내적 중심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성적 관계를 갖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세계에서,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처럼 감각을 무디게 하는 방어물을 세우지 않는 까닭에 보다 직접적으로 정신분열증을 경험하게 되는 그러한 정신분열증적 세계에서, 의지와 사랑이 점점 더 문제시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경우 의지와 사랑이 성취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신분열증적인 상황의 건설적인 이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세잔이 자신의 정신분열증적 성품을 어떻게 현대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는가를, 그리고 우리 사회에 내재한 신경을 쇠약하게 하는 경향에 대해 예술이라는 수단으로써 어떻게 대항하여 견딜 수 있었는가를 앞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들은 정신분열증적인 상태가 필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건전한 차원에 있어서 그것이 어떻게 선(善)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건설적인 정신분열증적 인간은 침식해 오는 기술의 정신적 공허감을 견디어 내면서 그로 인한 자신의 공허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작업을 하지만 기계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떨어져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생활이 궁핍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루노 베틀하임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에서 고립된 인간 ― 나는 그를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부를 것이다 ― 이 갖는 똑같은 우수성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유행하던 정신분석학적 확신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고립과 세계로부터의 정서적인 거리감은 성격의 결함으로 간주되었다. ‥‥‥‥ 내가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른 일단의 사람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처신한 훌륭한 태도에 대한 나의 논평은 바로 이 고립된 사람들을 보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가를 시사해 준다. 그들은 무의식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성격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극단적인 고난에 직면해서도 자신들의 가치를 고수하고 수용소 경험에 의해서도 인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재의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무너지기 쉬운 나약한 성격을 가졌어야 할 바로 이 사람들이 주로 그들의 성격의 강인함으로 인해 영웅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실제로 우주선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생존하고 그러한 생활에 필요한 감각의 제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 ― 21세기의 우리의 동료들 ― 은 외부로부터 고립하여 자기 자신의 내부로 빠져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더 J. 브로드벡은 그 증거를 개괄한 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우주여행에 요구되는 것들을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자는 정신분열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과도한 자극들이 제거해 버리는 내적 시계를 보존하고 있다. 이들 내성적인 사람들은 과도한 자극이나 자극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에 대한 <건설적인> 정신분열증적 태도를 개발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현재 그대로의 세계에서 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건설적으로 정신분열증적인 태도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 문제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무감동은 의지와 사랑의 철수, <아무튼 중요하지 않다>라는 진술 개입의 중지이다. 그것은 긴장과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인데 현재의 엄청난 양의 자극은 긴장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이제 <정상적인> 정신분열증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무감동은 공허감을 야기하며 자신을 방어하고 생존할 능력을 약화시킨다. 무감동이라는 말로 묘사되는 상태가 아무리 이해할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제까지 그 무감동의 주된 희생자였던 사랑과 의지의 새로운 기초를 발견하는 작업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