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master

인생공부를 마스터하여 인생을 마스터하기

1. 마스터의 종류

극기, 장애 코스 -> 마스터

깨달음, 깨침, 리더 leader, 사자 messenger, 치유자 healer

마법사 wizard, 군자, 선각자(先覺者)

2. 마스터의 단어 의미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습득하다, 몸에 배게 하다. 맥락을 터득하다.

① 지배[정복]하다, ┅의 주인이 되다.

② (격정 따위를) 억누르다, 참다(subdue).

③ ┅에 숙달하다, ┅에 정통하다.

④ (동물을) 길들이다.

3. 패러다임 전환

IN -> OUT ; 관심의 원-영향력의 원, 마스터는 내면의 작업

전인적 인간 ; 나는 무엇인가? 내 영혼이 나, 내 몸이 나?

상대 중심 -> 자기 진실 중심 -> 원리 중심 -> 진리 중심

완성의 길 => 완전해지는 길

죄의식 => 단순 인과 => 교훈, 기능성, 후회, 자신이 될 기회. (신의 손길 증명)

모든 병은 과정이고 자각의 기회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가. 영혼수업

1) 마스터는 내면의 작업

자기실현 <=> 남들의 실현

● 모든 인생공부는 항상 내면으로 집중되어 있다.

만약 인생공부가 ‘명확함’이라면, 자기 자신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받아들임’이라면, 절대 당신 주위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자기 ~ ‘신뢰’, ‘진실’, ‘조화 이루기’, 사랑, 변화, 존재의 완전함.

관계 ~ 커뮤니케이션, 남과 조화, 은혜


● 의지를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만은 바꿀 수 있다.”

2) 마스터의 내용

마스터 그 자체의 ‘기술’ the Art of Mastery itself : 깊은 의미들을 맥락으로 이해하고 습득하여 서로 연결하고 응용할 정도가 되기.

마스터한다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이들 속성으로 말미암은 문제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에서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속성이 우리 삶에서 다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까다로운 습관, 험난한 문제 혹은 행동 패턴 등은 그 사람을 떠날 것이다.

과정 ; 마스터하는 것은 도달할 목표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어 숙련되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128~129쪽

마스터하는 초기 단계에 있을 때, 보통 자신에게 진정으로 정직할 수 없다.

4. 역설 지향의 치료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맹점 실행.

적극적 공격이 손쉬운 수비 방식이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함지사지(陷至死地) 후에 생(生)하고, 치지망지(置之亡地) 후에 존(存)


5. 마스터 기술

가. 부정을 긍정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이다.

성장촉진자에게 도움될 수 있는 한 가지 정보는 내담자의 에너지 라인에 있는 각각의 굴곡을 마스터하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다. 즉, 그들의 에너지 라인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정적인 상태가 어디선가 긍정적인 상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도움될 것이다. 각자의 감정적 상태, 병, 에너지 하락과 역류를 마스터하기 위한 잠재적인 기회로 보는 것이 성장촉진자로서 효용성을 증가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다.

나. 역설 지향(paradoxical intention)치료

자신에게 가장 힘든 상황을 직면한다.

책임과 퍼스널 파워의 균형을 이루기.

다. 더 높은 목적을 발견

수직적 시간의 관점으로 사건을 재구성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기 - 반복되는 패턴의 포착

수직적 시간의 맥락을 통해 큰 그림을 보기

사건의 배후의 고귀한 목적을 자각하고, 선택하기.

체험의 의미를 결정하고 새롭게 재창조하기

라. 에너지 스탬프

인생공부와 관련된 험난한 과제들을 제거해버릴 것이다. 그들은 각본을 다시 쓰고 에너지 스탬프를 치유하거나 바꿔 버린다. 즉, 에너지 스탬프에 의해 성장촉진한 인생공부를 마스터하고 나면, 그들의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까다로운 습관, 험난한 문제 혹은 행동 패턴 등은 그 사람을 떠날 것이다. - 33쪽

마. 에너지 매트릭스의 경우

마스터하는 것은 도달할 목표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어 숙련되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128~129쪽

에너지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것보다 수용하는 방법을 찾기.

마스터하는 길 찾기.

자신의 약점을 글로 써서 공개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바. 긍정적 상황

부정적인 속성들에서 긍정적인 쓰임새를 찾는 것이다.

교정의 기회 : 응보가 아니라 단순히 인과임을 터득하기.

사랑과 관심이 있는 부모에게서 양육되어 아주 정직한 사람들이, 정직성이 현저하게 부족한 자녀를 갖게 되어 모든 인생을 정직의 문제를 지닌 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직에 문제가 있는 완벽한 역할 모델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 분야에서 자연스러운 균형 감각을 지니고 성장하는 것은 왜일까?


6. 마스터의 결과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특정 분야를 마스터 한다.

부정적인 사건을 긍정적인 태도로 활용.

가. 내면의 스승이 드러남

마스터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공부와 관련된 것들은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보통 자신의 열정과는 약간 다른 분야에서 가르친다.

가르침을 위한 형식이 있다거나 심지어 의식적인 행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내면에 있는 스승이 단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나. 촉매자 역할의 변화 : 변환자

마스터의 어떤 단계에 도달했을 때 일어나는 또 다른 것은 우리의 삶에서 촉매자와의 관계가 변한다.

많은 세대를 거쳐 내려온 에너지 스탬프의 영향

다. 마스터 이후

매트릭스가 마스터 되면 베일은 매우 얇아지기 시작.

가능한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태도를 재평가하는 것.

마스터하기 시작했을 때, 상대들이 자신의 역할을 재규정.

마스터한 삶의 습관을 발달시키고자, 성공한 경험들을 반복하는 쪽으로 전환.

마스터하면, 종종 가르침의 단계로 이동한다. 이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고, 종종 의식조차도 되지 않는다. 단순히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내보내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에 반응하는 것이다. 대부분 학생이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 중 극소수만이 자기가 마스터 중인 주요 인생공부에 대해 실제로 가르친다.

여덟 개에서 열 개 정도의 매트릭스를 마스터하게 되면 지구 위의 게임을 끝내고 다른 행성으로 갈 것.

당신에게 특히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무언가나 사람들을 본다면, 일반적으로 당신이 이미 마스터한 주요 인생공부를 그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신나이 구절


삶의 모든 것은 너희 자신의 창조 도구일 뿐이며, 삶의 모든 사건은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자신이 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영혼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므로, 이 우주에는 어떤 희생자도 없으며 오로지 창조자들만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되리라. 이 행성을 걸었던 모든 위대한 마스터들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희가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희생자로 여기지 않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그들 중 다수가 진실로 박해받았는데도 말이다.

하나하나의 영혼은 모두 마스터들이다. 자신의 기원과 자신의 유산을 기억하지 못하는 영혼들도 있긴 하지만, 개개의 영혼은 지금이라는 순간마다 자신의 더없이 고귀한 목적에 맞고, 가장 빨리 자신을 기억해내는 데 적합한 상황과 조건을 창조한다.


세상에는 어떤 희생자도 없고 어떤 악당도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으로 네가 희생되는 일도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너희가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들 전부를 너희 자신이 창조해냈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들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앞선 수준의 사고방식으로 모든 마스터들이 늦든 빠르든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일부라도 바꿀 힘을 얻는 것은 그들이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네가 외부 사건을 바꿀 수는 없다. (외부 사건은 너희 다수가 창조해낸 것이다 집단이 창조한 것을 개인이 바꿀 수 있을 만큼 네 의식이 충분히 성숙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면 체험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깨닫는 길이다.

저절로, 그리고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건 아무 것도 없다. 고통은 잘못된 생각의 결과다. 그것은 생각의 오류이다.

마스터들은 가장 쓰라린 고통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마스터들은 이런 식으로 치료한다.

고통은 너희가 어떤 것에 관해 내린 판단 때문에 생긴다. 그 판단을 제거해보라. 그러면 고통이 사라진다.


우연의 일치란 없으며,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나 모험은 '참된 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너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모든 참된 마스터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신비주의 마스터들이 최악의 체험들(너희가 규정하는 식대로 하면)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기독교의 위대한 마스터들은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면서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원했다는 걸 알고 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줄곧 그것들 전부를 너희에게 얘기해왔다. 나는 수도 없이 되풀이했으며, 수많은 마스터들을 너희에게 보내주었다. 너희는 내가 보낸 마스터들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너희는 그들을 죽인다.


감정은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너희가 에너지를 움직이면 결과가 창조된다. 만일 너희가 그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움직이면 너희는 물질을 창조한다. 만일 너희가 그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움직이면 너희는 물질을 창조한다. 물질은 응축된conglomerated 에너지다. 둥글게 모아졌고 함께 밀쳐진 에너지, 만일 특정한 방식으로 충분히 오랫동안 에너지를 조작한다면, 너희는 물질을 얻을 수 있다. 마스터들은 모두 이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이 우주의 연금술이다. 그것이 모든 생명의 비밀이다.


이 행성 위를 걸었던 마스터들은 상대계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이어서 그것의 실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컨대 마스터들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순간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사랑만을 택한 사람들이다. 죽임을 당할 때조차 그들은 그 살인자들을 사랑했다. 박해를 받을 때조차 그들은 그 압제자들을 사랑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받아들이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

예수가 한 일이 이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길이고, 크리슈나의 방법이며, 이 행성에 나타난 모든 마스터들의 발자취이다.

그리고 모든 마스터들은 하나같이 이런 가르침을 전했다. 나는 곧 너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희도 할 수 있다. 또한 너희는 이 이상 가는 것도 하게 되리라.

하지만 너희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너희는 훨씬 더 어려운 길, 자신을 악마라 생각하고 자신을 악하다고 상상하는 길을 선택해왔다.


깨달음이란 본능적gut-level인 명확성clarity, 완벽한 확실성certainty, 어떤 것의 현실성에 대한 완벽한 인정acceptance이다.

깨달음의 이 자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감사gratitude의 자리이다. 그것은 미리advance 하는 감사thankfulness이다. 그리고 아마도 창조하기 전에 창조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것이야말로 창조의 최대 열쇠일 것이다. 그 같은 당연시 여김은 신이 용서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격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깨달음의 확실한 표식이다. 모든 마스터들은 그 행동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안다.


참된 마스터는 어떤 것도 '버리지give up' 않는다. 참된 마스터는 그것을 그저 옆으로 제쳐놓을 뿐이다. 더 이상 쓸모없는 것들을 처리할 때처럼.

너희에게 자신의 욕구들을 극복overcome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의 실천은 엄격한 훈련처럼 여겨지지만, 후자의 실천은 즐거운 연습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열정이 아니다. 이것은 기대이다.

기대는 인간이 겪는 불행의 가장 큰 원천이며, 인간을 신에게서 떼 내는 것이다.

사실 마스터들은 열정이야말로 신에게 이르는 길, 자기실현으로 가는 길임을 직관으로 안다.

만일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열정이 없다면 우리는 전혀 사는 게 아니라는 그런 사람들의 흔한 표현조차도 이점을 잘 드러내준다.


성자들은 '말없이 고통을 겪기'는 하나, 그렇다고 고통이 좋은 것이란 뜻은 아니다. 깨달은 사람이 되려는 이들은 고통이 신의 길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신의 길에 관해 배우고 기억할 만한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확실한 표식임을 알기에 말없이 고통을 겪는다.

참된 마스터는 결코 말없이 고통받지 않는다. 그냥 불평 없이 고통받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참된 마스터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 소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그냥 체험할 뿐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마스터들은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이 어떤 힘을 갖는지 명확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에 관해서는 그저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택했기 때문에.

너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현실이 된다. 마스터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마스터는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지 스스로 선택한다.

너희들도 이따금 이렇게 해왔다. 너희 중에 두통이 사라지게 해보지 않은 사람이나, 치과에 가는 고통을 줄여보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렇게 이루어졌다.

참된 마스터는 이와 똑같은 결정을 단지 더 큰 일에 대해 내릴 뿐이다.


참된 마스터는 가장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은 마스터를 창조 하는 사람이다.


마스터는 '상대방의 상태'와 '하는 일'과 '가진 것'과 '말'과 '바람'과 '요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이 '뭘 생각'하고 '뭘 기대'하고 '뭘 계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에서 자신이 무엇이냐는 것뿐이다.


너희는 신이 보낸 모든 마스터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이런 저런 방법으로). 단 한 명의 마스터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들이 너희보다 더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너희가 그들을 더 성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선생들은 한결같이 같은 메시지를 갖고서 세상에 왔다. '나는 너희보다 더 성스럽다' 가 아니라, '너희도 나만큼 성스럽다' 는 메시지를 갖고서.


마스터는 그런 체험을 충분히 겪었기에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 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충분히 시험해' 볼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스터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실현에 삶을 바쳐왔기에 자신에 잘 맞지 않는 그런 느낌들을 절대 즐기지 않는다.

마스터들이 소위 재난이라는 것을 만나도 동요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스터는 재앙의 씨앗들(과 모든 체험들)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재난을 축복한다. 그리고 마스터가 추구하는 삶의 두 번째 목표는 언제나 성장이다. 왜냐하면 충분한 자기실현을 경험하고 나면 그 이상이 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일에서 신의 일로 되는 것이 이 단계이다. 내가 이른 단계가 이 단계이니까!


마스터는 항상 똑같은 대답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이 면에서 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당장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그 제자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 대응하거나 반응할 때, 어떤 수준의 선택을 하는지 만 보아도 그 사람의 깨달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은 너와 남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There is naught but you.

너희 행성을 걸었던 모든 마스터들은 이 진리를 가르쳐왔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나니,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다. - 마태25/40)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현실에서는 거의 적용될 수 없는 비전상의 위대한 진리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비전상의' 진리다.


이따금 인간들은 자신의 참모습, 즉 전쟁을 혐오하는 존재라는 가장 위대한 진술을 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이따금 너희는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마스터들 가운데는 너희가 그 모든 걸 기꺼이 버릴 때까지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준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아의 모습을 갖기 위해, 결코 전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역사는 인간들에게 그런 결단을 요구해 왔다.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관계들에서도 똑같은 것이 적용된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기 아님'의 측면을 보여야 하는 경우를 한두 번 이상씩은 겪기 마련이다.


나는 영원한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이 땅에 많은 마스터들을 보냈다. 그리고 세례 요한 같은 이들을 사자로 보냈다. 그들은 강렬한 언어로 진리를 전달했고, 생생하게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특별한 사자들은 비범한 통찰력과 영원한 진리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권능에 더해, 복잡한 개념들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네가 바로 그런 사자다.


너는 계속해서 마음을 바꾸고 있다. 삶은 계속되는 창조 과정임을 잊지 마라. 너는 시시각각 네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너는 오늘 내린 결정이 내일 내리는 결정과 다를 때가 자주 있다. 하지만 마스터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 모든 마스터들의 비밀이 있다. 그들은 항상 같은 걸 선택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요?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네 의지가 네 현실로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선택하라.

그렇게 되기까지 몇 년씩 걸리는 사람도 있고, 몇 달씩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 몇 주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깨달음에 근접한 사람이라면 며칠이나 몇 시간 혹은 몇 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들에게 창조는 즉석에서 이루어진다. 의지와 체험 사이의 간격이 줄어가는 것을 볼 때, 너는 자신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중임을 알 것이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예수의 견해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청하는 꼭 그대로의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도움의 종류를 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나서.

그는 한 번도 남을 돕기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희가 뿌린 씨는 너희가 거두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단순히 자신이 주고자 하는 도움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청한 도움을 그들에게 준다면, 그들이 받을 준비가 된 수준에서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마스터들, 과거에 너희 행성을 걸었던 이들과 지금 걷고 있는 이들의 방법이다.


그냥 아무 것도 원하지 마라. 선호는 갖되, 욕구는 절대 갖지 마라.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존재 상태이다. 그것은 마스터의 자리이다.


너희 구루를 존경하는 건 힘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얻는 것이다. 너희가 구루를 존경할 때, 너희가 자신의 마스터 스승을 찬미할 때, 너희는 '나는 당신을 본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리고 너희가 남에게서 보는 것이라면, 너희는 자신에게서도 보기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너희 내면 실체가 외화된 증거물이다. 너희가 구루에게서 보는 것은 너희 내면의 진실, 너희 존재의 진실에 대한 외화된 증명이다.


있다. 순간마다 너희의 앎을 행동으로 표현하라. 환상의 세계가 너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하라. 겉모습이 아무리 너희를 미혹하더라도 너희가 아는 것에 머물러라.

모든 마스터들이 해왔고, 하고 있는 일이 이것이다. 그들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들이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이번 생애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생애에서도, 너희가 어떤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너희는 신 체험을 재창조함에 있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자유선택권을 가질 것이다. 너희는 우주 수레바퀴의 모든 지점으로 옮아갈 수 있다. 너희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도 '되돌아올' 수 있고, 선택하는 다른 어떤 차원이나 현실, 태양계, 어떤 다른 문명으로도 '되돌아올' 수 있다. 신성(神性)과의 완전한 합일 지점에 이르렀던 사람들 중 일부는 깨달은 마스터로 '되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다, 떠날 때 깨달은 마스터였다가 다시 그 모습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길'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틀림없이 너도 몇십 몇백 년에 걸쳐 되풀이되는 생김새를 하고서 너희 세상으로 몇 번이고 되돌아온 구루와 마스터들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가야 할 곳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으며, 지금 이 순간 너희가 되고 있는 바로 그 자신을 빼고는 누구도 '될' 필요가 없다.

진실은, 여행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되고자 하는 그것이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고자하는 그곳에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마스터다. 그래서 그는 그 투쟁을 끝낸다. 그러고 나면 마스터는 너희가 투쟁을 끝내도록 도와주려 한다. 너희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남들의 투쟁을 끝내길 추구하게 되듯이.


삶의 순환과 관련해서 맥빠짐 따위는 없다. 오직 기쁨만이, 그냥 기쁨만이, 그리고 더 많은 기쁨만이 있을 뿐이다.

참된 마스터들은 오로지 기뻐한다. 지금은 너희가 이런 깨달음의 차원에 머무는 걸 바람직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황홀경 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항상 기쁠 수 있다. 너희는 기뻐하기 위해서, 황홀경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그냥 그런 황홀경이 있음을 알기에 기쁠 것이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자신에 관해 생각했던 것을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 사람의 본보기다. 그는 자신에 관해, 그리고 나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아주 명확한 관념을 갖고있었으며, 그것을 '그려내는 데' 자기 인생을 바쳤다. 그는 자신에 관한 관념을 자기 현실 속에서 체험하고 싶어했다. 체험을 통해 자신을 바로 그것으로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마스터와 베이브는 자신에 대해 서로 전적으로 다른 관념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 다 똑같이 그 관념들을 장대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그들 두 사람은 당연히 나에 대해서도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와, 자신과 나의 참된 관계를 보는 의식수준이 다른 데서 연유한다. 그리고 그런 의식수준들은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 반영되었다.

한 사람은 자기 삶의 대부분을 평화와 고요의 자리에 머물면서, 남들에게도 깊은 평화와 고요를 가져다준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초조와 소란과 간헐적인 분노(특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의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소란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둘 다 똑같이 착했다. 사실 베이브보다 더 마음이 여린 사람은 없었다. 그 두 사람간의 차이라고 하면, 한 사람은 물질 소유의 측면에서 실상 아무 것도 갖지 못했지만 한 번도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원한 적이 없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걸 가졌는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건 전혀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法)이요, 이것이 부처다. 이것은 부처 법이다. 이것은 가르침이자 스승이요, 교훈이자 마스터다. 이것은 둥글게 말려서 하나가 된 대상이자 관찰자다.

그것들이 하나 아닌 다른 것이었던 적은 없다. 삶이 눈앞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그것들을 펼친 건 너희였다.

그러나 너희 앞에 펼쳐진 자신의 삶을 볼 때, 너희 자신이 끌러지게 하지는 마라. 자신을 묶어둬라! 환상을 보고 그것을 즐겨라! 하지만 환상이 되지는 마라!

너희는 환상이 아니라 그것의 창조자다.

너희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지, 이 세상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너는 방금, 진짜 마스터라면 성적 독신을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으리란 사실에 동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성적 표현을 부끄럽게 만들고, 그것을 둘러싸고 온갖 종류의 죄의식과 기능장애를 발달시킨 것이, 어쨌든 성적 절제가 '더 고상한 길'이고, 성적 표현은 '더 저급한 욕구'라는 이런 관념이다.


우리가 방금 배웠듯이, 참된 불변성(겉모습의 불변성과 반대되는 것으로서)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겉모습만의 동일성을 창조하려 해도 위대한 마스터가 있어야 한다.

마스터가 동일한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려면, 그는 모든 자연스런 경향을 넘어서야 한다(변화하려는 경향이 자연스런 쪽임을 잊지 마라). 사실 그라도 모든 순간에 똑같게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똑같은 겉모습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할 만큼은 비슷하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마스터'가 아니라도 항상 '똑같이'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그 사람의 행동과 외양이 원체 예측가능해서 목을 걸고 내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압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한다.

마스터는 높은 수준의 유사성(너희가 '일관성'이라 부르는 것)을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이지만, 그 제자는 굳이 그렇게 의도하지 않고서도 일관성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특정 환경에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예컨대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라는 말 따위를 자주 하겠지만,

마스터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 사람의 반응이 탄복할 만한 결과-그들이 칭찬 받을 일-를 가져오더라도, 그는 아마 '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어. 사실 그건 저절로 된 거야.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대꾸하겠지만,

마스터라면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스터는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 아는-완전히 말 그대로-사람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하는지도 안다.

반면에 깨달음의 차원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흔히 양쪽 다 모른다.


만일 '이 하나의 관계,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딱 하나의 관계만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특별하다'고 말하는 존재가 '참된 자신'이라면, 결혼이라는 너희의 고안물은 완벽하게 그렇게 보장해준다. 하지만 영적 마스터로 인정받고 있거나 인정받았던 사람들 거의 다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건 흥미롭지 않느냐?

맞아요, 마스터들은 독신이기 때문이죠. 그 사람들은 섹스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다. 그것은 마스터들이 결혼이라는 너희의 지금 고안물이 끌어내려는 진술-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에게 더 특별하다는 진술-을 진실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터는 이런 진술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도 하지 않는 진술이다.

사실 너희가 지금 고안한 대로의 결혼서약은 대단히 신답지 못한 진술을 너희가 하도록 만든다. 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약속이 그것인데도, 너희는 이것을 가장 성스러운 약속이라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역설이다.


마스터는 부정이, 환상을 계속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안다. 반면에 인정은 이제 환상을 끝내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인정과 선언과 드러냄demonstration, 이것이 신을 향해 가는 세 단계다. '자신이 참으로 누구고 무엇인지'를 인정하고, 온 세상이 다 듣도록 그것을 선언하며, 모든 면에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자기 선언 뒤에는 언제나 드러냄이 뒤따른다. 너희는 자신이 신임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도 너희는 너희 자신이라 여기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너희 삶 전체가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가장 큰 도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 드러냄에서다. 너희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멈추자마자, 남들이 너희를 부정할 것이기에.

너희가 신과 '하나됨'을 선언하자마자, 남들은 너희가 사탄과 손잡았다고 선언할 것이고,

너희가 최고의 진리를 설교하자마자, 남들은 너희가 최악의 신성모독을 설교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깨달음을 차분히 드러낸 모든 마스터들이 그러했듯이, 너희 역시 숭배되면서 모욕당하고, 떠받들리면서 짓밟히고, 추앙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너희로서야 그 순환이 끝나겠지만, 여전히 환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로서는 너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를 것이기에.


내 아들아,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게임이 삶 자체이고, 삶이 바로 '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러 모든 앎을 이룬 개별 요소, 아니 당신 표현대로 '전체의 부분'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런 마스터는 그 순환의 자기 부분만이 완료되었음을 안다. 그녀는 자신의 환상 체험만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

이제 마스터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녀는 마스터플랜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순환이 완결되어도 그 게임은 계속되리란 걸, 그 체험은 계속되리란 걸 안다. 그러고 나면 마스터는 이제 자신이 그 체험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까지 안다. 마스터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스터는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그는 환상임을 알기에 환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마스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과 즐거움에 들어맞을 때 이따금 이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의 깨달음을 선언하고 드러내니, 남들은 그를 신/여신이라 부르리라.

너희 종 전체가 깨달음으로 인도되어 그것을 이뤄낸다면, 전체로서 너희 종(너희 종은 하나의 통일체이기에)은 시간과 공간 속을 마음대로 옮겨 다닐 것이고(너희는 물질 법칙들을 이해했듯이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될 것이다), 너희는 다른 종과 다른 문명들에 속한 이들 또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려 할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몇백만의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지금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나도 그건 안다. 그 모두가 '마스터플랜'의 일부다. 너희가 마스터가 되게 하려는 계획의 일부.


최고의 복잡성은 최고의 단순성이라는, 최고의 '신성한 이분법'이 있다.

체계가 '복잡할수록', 그 디자인은 단순하기 마련이다. 사실 그것은 그 '단순함'으로 지극히 우아하다.

마스터는 이 점을 이해한다. 바로 이것이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이 지극히 단순하게 사는 이유고, 고도로 진화된 모든 체제들이 지극히 단순한 이유다. 고도로 진화된 통치체제, 고도로 진화된 교육체계, 고도로 진화된 경제나 종교체계, 그 모두가 우아할 만큼 지극히 단순하다.

예를 들면 고도로 진화된 통치체제에는 자치를 빼고는 사실상 아무런 통치도 들어 있지 않다.


몇몇 영적 운동세력들은 이것을 '놔두어라, 신이 알아서 하도록'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훌륭한 이해다.

너희가 그냥 내버려둔다면. 너희는 결국 '길'에서 벗어날 것이다. 삶 자체라 불리는 과정이 '길'이다. 이것이, 모든 마스터들이 '나는 생명이요, 길이다'고 말한 이유다. 그들은 내가 여기서 말했던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들은 생명(삶-옮긴이)이고, 그들은 길이다. 진행 중인 사건, 과정이다.

지혜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그 과정을 믿으라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신을 믿으라는 것뿐이다. 혹은 원한다면 너희 자신을 믿어라. 너희가 신이니.

잊지 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다.


그렇게 하면 내가 기대하는 것을 갖게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 그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참된 마스터는 기대의 공간 밖에서 산다. 그는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왜요?

그는 이미 자신이 모든 걸 갖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특정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전체의 어떤 부분이든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는 그 모두가 완벽하다는 것, 삶이란 완벽히 자신을 완전히 연출해 내는 것임을 안다. 이런 상태에서는 믿음trust이 필요하지 않다.


맞았다. 너는 완벽한 일이 벌어지리란 앎에 이르렀다.

특정한 일이 벌어지리란 것이 아니라 완벽한 일이 벌어지리란 것이고, 너희가 좋아하는prefer 일이 아니라 완벽한 perfect 일이 벌어지리란 것이다. 너희가 깨달음으로 나아 갈수록 이 둘은 하나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너희는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좋아한다. 그 사건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일어나는 일-그 일이 어떤 것이든-에 대한 너희의 선호다. '놔두어라, 신이 알아서 하도록'이란 게 이런 것이다. 마스터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을 좋아한다. 너희 역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좋아할 때,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마스터가 모든 것을 완벽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멋지다! 너는 이해했다!

마스터가 어떤 의식 수준에서 그런 결말을 의도했는지 항상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특정 의식 수준에서 자신이 그 결과에 책임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맞다.

그리고 마스터가 다른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을 심판하는 데 절대 가담하지 않는 이유 또한 이것이고요. 마스터는 자신이 그걸 거기에 놓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하는 것이 특정 의식 수준에서 자신이 창조한 것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을 바꾸는 건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도요.

그렇다.

또 그 과정에서 비난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요. 사실 우리는 자신이 비난하는 걸 계속 겪게 마련이죠. <인과법칙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참된 마스터는 이것을 안다. 참된 마스터가 모든 사람들을 '참된 그들'로 인정하고, 그들더러 겸손이라는 미명으로 자신의 장대한 측면들을 부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인정하라고 격려하는 이유 역시 이것이다.

예수는 들을 귀를 가진 모두에게 분명하게 자신을 알렸고, 자신을 선언했다. 그리고 너희 행성을 걸었던 다른 모든 마스터들 역시 그러했다.

그러니 자신을 알리고, 자신을 선언하라. 그런 다음 네가 선언했던 그 존재상태 속으로 완전히 옮아가라.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들마다 네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차원으로 너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라. 이렇게 할 때 나는 찬미 받으리니.

신의 영광이란 참으로 경이롭게 표현된 너희의 영광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너희가 깨달음에 이르고 나면, 너희는 너희 자신을 통해 남들더러 '그들이 누군지를' 체험하도록 해줄 것이다.[거울, 일깨움] 너희가 만난 사람이 마스터인지 알아보는 방법이 이것이다. 마스터는 너희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마스터는 너희를 너희 자신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왜냐 하면 마스터는 너희를 알아보기recognize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스터는 너희를 재인식한다re-cognize, 즉 너희를 다시 안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재인식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참된 자신'으로 안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이것을 남들에게 전해 준다. 너희는 마스터가 되었기에, 더 이상 남들을 통해 너희 자신을 알려 하지 않고, 너희를 통해 남들이 그들 자신을 알도록 해주고 싶어 한다.[빛, 등대, 소금, 누룩]

그래서 내가, 참된 마스터는 가장 많은 제자를 거느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은 마스터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자립]


너희가 '자신'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겠으며, 너희가 자신의 영광을 깨닫고 선언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영광을 깨닫고 선언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다시 한 번 말하나니, 모든 참된 마스터들은 자신의 영광을 선언했고,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북돋워 주었다.

너희가 자신의 영광으로 가는 길을 밟기 시작하는 건, 너희가 자신의 진실로 가는 길을 밟기 시작할 때고, 너희가 자신의 진실로 가는 길을 택하는 건, 너희가 앞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모두에게 항상 진실만을 말하고 항상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겠노라고 선언할 때다.

이 공약(公約)에서 부정은 있을 자리가 없다. 하지만 너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자기 연인에게 말하는 건 부정이 아니다. 그건 솔직함이다. 그리고 솔직함은 사랑의 최고 형태다.


마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택할 자유를 자신에게 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자유를 준다.

자유는 신의 본성이니, 자유는 언제나 삶의 기본 개념이자 기본 구조물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자유를 줄이거나 제한하거나 침해하거나 배제하는 모든 체제는 삶 자체에 맞서는 체제(體制)다.

자유는 인간 영혼의 목표가 아니다. 자유는 인간 영혼의 본성 자체다.


내 아들아, 의심하라. 그런 게 바로 의심이다. 아주 잠시라 해도, 불과 일초간이라 해도. 그러니 내 친구여, 알아두게. 마스터들 모두가 자신의 겟세마네 동산을 찾아간다네. 거기서 그녀는 마스터들이면 으레 묻곤 하는 질문을 던지지. '이게 사실일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걸 내가 자초했단 말입니까? 제가 이 잔을 마시는 게 진실로 신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렵니까?' 하고 말일세.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말이 맞다. 영적 마스터들은 하나같이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이 뭐가 되어 있는지를 의식하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있는다. 네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너는 그렇게 있을 수 없다. 너는 그렇게 있는 걸 늦추거나, 그렇게 있는 걸 부정할 수 있을 뿐이다.


너는 그 체험들 자체가 일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네 사랑 표현을 즐기지 못하거나 그것에서 영원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려느냐? 아니면 그런 특정 형태의 사랑 체험이 일시적임을 안다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때는 '전력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드넓은 이해의 자리로 가려느냐?

네가 후자의 자리로 간다면, 너는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마스터들은 삶과 삶이 계시하는 모든 것을 순간 순간마다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신성의 표현임을 알기 때문이다.


참된 가르침은 너희가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너희더러 기억나게 해주는 과정[일깨움]이다. 이 과정에서 너희에게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기에, 그중 어떤 것도 너희 영혼을 놀라게 할 수 없다. 참된 가르침은 지식을 집어넣는 과정이 아니라 지식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참된 마스터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제자보다 더 크지 않다는 걸 안다. 다만 그는 더 많이 기억할 뿐이다.

너는 우리 대화에서 중요해 보이는 것을 현실세계, 다시 말해 일상생활 속에서 실제적이고 도움 되는 진리로서 적용할 방법을 알고 싶다고 했고, 나는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돕고 있다. 신과 우정을 나눈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다.


다시 말해 네 체험은 '참된 자신'을 완전히 기억해낼 때 바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여기에 있고, 너는 남들이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네가 기억해낼remember 때, 너는 다시 한번 신의 몸을 재구성한다re-member, 즉 신의 몸의 구성부분member이 된다. 너는 존재 전체와 하나가 된다. 물론 전체를 특정한 개별성으로 표현하는 네 부분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영광스럽게 나타나겠지만.

네 개별 표현이 그토록 영광스러울 때, 아마도 사람들은 너를 신이나 신의 아들, 부처, 깨달은 자, 마스터, 성자, 심지어는 구원자라고까지 부를 것이다.

그리고 너는 구원자가 되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망각에서, 자신의 '하나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서, 서로에게서 분리된 듯이 행동하는 데서, 구하게 될 것이다.


신의 표현이 되겠노라는 너희의 결정으로 너희는 찬미받을 것이고, 신과의 합일을 체험하겠노라는 너희의 선택으로 너희는 실현될 것이며, 진리를 알아내겠노라는 너희의 결단으로 너희는 행동으로in deed진리를 밝힐 것이다 단지 생각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너희는 하늘왕국과 신의 가슴속에 한 자리를 양도받았다been deeded. 이것은 너희의 공적deed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너희 행동deed으로 반영될 때 너희는 진짜indeed 마스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향해가는 그곳에 깨달음이 있음을 알아라. 그곳은 너희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이기에, 내가 너희를 이끌어가는 곳이고, 내가 너희더러 서로를 이끌어가라고 권하는 곳이다.

이제 신과 우정을 나누고, 남들이 너희와 나누는 우정으로 그들도 신과 우정을 나누고 있음을 그들더러 알게 하라.

너희와 나는 하나이니, 너희는 그들이 친구 삼고 있는 신이기 때문이다.


신은 너희보다 더 위대하지 않다는 평가가, 어떻게 신이 그럴 수 있냐고? 신이 너희이고 너희가 신이니까. 너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하다.

마스터는 이것을 안다. 이것을 아는 마스터들이 지금 이 순간 지구 위를 걸어다니고 있다. 전통과 종교와 문화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도 마스터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는 공통점을.


그러므로 마스터는 절대 불평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이 자기 내부는 물론이고 자기 외부로도 번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마스터가 불평하지 않는 것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픔의 체험을 고통이 아닌 그냥 아픔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아픔은 그냥 하나의 체험이지만, 고통은 그 체험을 놓고 내리는 판단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아픔을 달갑지 않은 것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아픔을 완벽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삶의 고통도 꼭 그만큼 제거될 수 있다. 마스터들은 이런 인식을 통해서 모든 고통을 극복한다. 비록 모든 아픔을 피할 순 없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너희의 기억하기에 달려 있다. 교육이란 말의 의미는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 내는 것'이다. 모든 참된 교육은 이미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서 끄집어 내는 것이다. 마스터는 그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거기에 갖다 놓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냥 그것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아채도록 애쓸 뿐이다.

가르침은 남들이 배우도록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기억해 내도록 돕는 것이다. 모든 배움이 기억해내기이고, 모든 가르침이 기억시키기이며, 모든 수업이 다시 떠올린 기억들이다.


너희가 이것을 이해할 때 너희 삶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고, 너희 중 대다수가 이것을 이해할 때 너희 행성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너희는 이 비밀을 이해했던 사람들을 마스터라 불러왔고, 이 비밀을 가르쳤던 사람들을 스승(아바타)이라 불러왔으며, 이 비밀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복받은 자福者라 불러왔다.

그러니 축복받을지어다.

깨달은 마스터로 살려면 이단자가 되어야 하고 불경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믿지 않을 테고, 너희가 그들의 낡은 진리를 부정하는 순간에 그들은 너희의 새로운 진리를 부정할 테니까.


이 정보가 비의적秘儀的인 기쁨을 줄 수 있지만, 자기 몸과 자기 가족 그리고 자기 환경을 잃을지 모른다는 너희의 두려움을 없애진 못할 수도 있다.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한 가지 방법은 마스터의 수행법인 초연함에 이르는 것이다. 마스터는 몸의 삶이 환상이란 증거를 얻기 전에 초연함에 이르는 법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반면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이 증거를 얻기 위해 죽음이라는 체험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무지는 환상이다. 그것을 환상으로 볼 때, 너희가 모른다는 건 진실이 아님을 알 때, 그 환상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다. 너희는 안다. 그리고 너희는 자신이 안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모든 마스터들이 다 그러하다.

마스터들은 자신이 안다는 걸 알고, 자신이 속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가 아니라 그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 그 앎을 이용한다. 그래서 너희 세상에서 그들은 '삶'의 모든 환상을 쉽게 창조해내고 이용하는 마술사처럼 보인다.


마스터와,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에 올라선 구도자들은 '환상'이 환상임을 알고, 그것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정한 다음, 그 '환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그 다음에 체험하게 될 것을 의식하면서 창조한다.


예를 들어, 만약 자신이 산소가 필요하다고 상상하면, 너희는 순식간에 공포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논리적인 귀결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마스터나 임사 체험을 하여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실히 아는 사람들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아마도 자신을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아픔과 고통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삶의 환상'을 그것의 원래 목적대로 보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마스터들은 이 차이를 안다. '필요의 환상'이라면 인간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해지려면 아픔 없는 상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증언할 수 있듯이, 아픔과 행복은 상호 모순이 아니다.

아픔 없는 상태는 필요need가 아니라 선호preference다. 이렇게 '필요'를 선호의 차원으로 옮겨놓을 때, 너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체험을 지배할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다. 너희는 아픔을 지배하기에 충분한 힘, 사실상 그것을 무시하고 종종 그것을 실제로 사라지게까지 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증명했다.


너희가 이 에너지를, 그것의 미묘함과 그것의 힘을 느끼는 법을 기억해 낼 때, 너희는 그것을 조절하고 감독하는 법도 기억해 낼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데 마스터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수양법을 가르치는 스승들이 있다.

또한, 스스로 하겠다는 내적 결심만 있으면 혼자서 이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스터나 교사, 구루의 지도를 바란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는지가 중요하다. 너희는 그 혹은 그녀가 신과의 접촉, 창조주와의 만남을 가르치는 방식을 통해 그 사람이 마스터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외부에서 신을 찾으라고 너희에게 부르짖고 절규하고 훈계하고 부추긴다면, 즉 그들의 진리, 그들의 경전, 그들의 방식, 그들의 근거지에 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경계자세'를 취하고 이번 것은 환상임을 기억해 내라.

만일 그들이 너희 내면에서 신을 찾으라고 조용히 권한다면, 만일 그들이 너희와 내가 '하나'여서 그들의 진리와 그들의 경전, 그들의 방식, 그들의 근거지가 너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때 너희는 마스터를 찾은 것이다. 너희가 내면 깊은 곳에서 그 마스터에게 이끌렸다는 그 이유뿐이라면.


사실 참된 마스터들은 소란과 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소란과 분쟁을 앞에 두고도 평온을 체험한다.

모든 존재가 추구하는 것이 이런 내면 평화다. 그것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또 너희는 언제나 '참된 자신'을 체험하길 추구할 것이다.


마스터들조차도 종종 깨달음을 체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다시 한 번 깨달음에 눈뜨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 때문에 너희가 보기에는 그들이 '진짜 마스터'라면 일어날 수 없거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마스터들에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마라, 너희가 오늘이라도 자신의 마스터를 만날지 모르니, 집 없는 노파나 공원의 강도로 나타날 자신의 마스터를, 그들이 산꼭대기의 구루로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다. 마스터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스터들은 인정받기보다는 비난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히려 너희 중 하나인 듯이 보이면서 너희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마스터가 너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라. 언제 너희의 마스터가 올지 너희가 모르고 있으니, 그는 성스런 계율과 사회 관습을 어기는 탓에 자칫 너희가 범죄자로 못 박을 수도 있는 모습으로 와서, 그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힐 수도 있다